히브리서

히브리서 6장 강해(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에 거하라)

호걸영웅 2023. 1. 28. 05:21

               히브리서 6장 강해(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에 거하라)

서론)

6장은 외국에서 믿음을 새로 소유했던 유대인 성도들에게 혹 흔들릴 수 있는 믿음의 현실적 위기에 대하여, 결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믿고 요동치 말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본론)

)온전한 믿음을 갖으라

[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성도가 믿은 지 어느 정도 지나면 영적으로 성장함이 당연하므로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을 넘어서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초보적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첫째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입니다. 죽은 행실이란 죄악된 행실들을 가리키죠. 그것은 불경건, 우상숭배, 돈 사랑, 불의, 미움, 음란, 거짓, 탐욕 등이죠. 죄를 회개함은 신앙생활의 첫걸음이며 기본입니다.

2)둘째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죠. 회개한 자는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고 섬기는 것은 경건의 기본적 요소입니다. 회개와 믿음은 신앙생활의 첫걸음입니다( 20:21).

3)셋째는, 침례들입니다. ‘침례들’은 회개와 믿음의 간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씻음을 받았습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하고 확증합니다.

4)넷째는, 안수입니다. 침례의 의식의 안수는 죄 사함을 상징하고, 임직식의 안수는 회중으 로부터 그 직분의 성별을 나타내고, 병자에게 안수함은 하나님의 치료하시는 은혜의 손길을 구하는 뜻이 있습니다.

5)다섯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죠. 예수께서는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을 말씀하시면 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어요( 5:29).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습니다.

6)여섯째는, 영원한 심판이죠.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고 불변합니다. 또 천국이 영원하듯이, 지옥도 영원합니다( 9:43).

우리는 이런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에만 머물러 있거나 그 터를 다시 닦는 변절된 거짓 믿음 으로 비뚤어진 길로 가지 말고 완전한 데, 곧 확신의 믿음으로 살아야만 합니다.  ‘완전한 데’라는 말은 확신함 가운데 영적 성숙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죠.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의의 말씀 가운데서 선악을 분별하는 영적 성숙 및 지혜를 말합니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3절은 구원적 신앙의 시작이나 그 신앙의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고전 3:6-7)=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라나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신앙의 성숙함에 나아갈 것이다-라고 함과 같은 의미입니다.

)배교한 자의 구원은 회복이 불가하다

[4-6] [이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없 음이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본문은 우리가 초보적 진리에 머물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보여 줍니다. ‘한번 비췸을 얻었다’는 말씀은 복음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구원의 기쁨을 맛본 것을 의미합니다. 또‘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체험했다는 뜻이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복음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선한 내용들, 즉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과, 내세에 있을 부활과 천국의 기쁜 일들과 심판과 지옥의 두려운 일들에 대해 믿게 된 것을 뜻합니다. ‘타락한 자들’이란 기본적 신앙에서 떨어져 배반한 자들, 즉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했어요. 배교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혹은 공공연하게 욕을 보이는 것과 같은 치명적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하여 배교자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도가 끝까지 견디어 영광에 이른다는 것 즉 소위 ‘성도의 견인(堅忍)’을 밝히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0:28; 1:6), 하나님의 선택의 불변함과 예수 그리스도 의 대속(代贖) 사역과 중보 사역의 완전함, 성령의 인치심의 진리들은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하 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자들은 잠시 연약할 수 있으나 마침내 다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가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 이해하지 말고 가상적인 경고로 이해하거나, 혹은 정말로 믿은 것이 아닌 가상적인 믿음, 혹은 불확실함 가운데의 믿음으로 살다가 배교로 변절 된 경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은 자들은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겸손과 두려움으로 깨어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일 어떤 이가 타락하여 믿음을 배반했다면 그는 참으로 중생한 자는 아닐 것입니다.

)배교자에 대한 비유

[7-8] [이는]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의 단비, 은혜의 단비를 받아 성장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기는 커녕, 가시와 엉겅퀴 같은 나쁜 열매를 맺으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마침내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타락과 배교의 위험한 경계선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헤엄치기를 멈춘 물고기는 그저 떠내려 감과 같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따르는 선행

[9-10]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이는]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사랑의 수고로](전통사본)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하심이니라].

 

바울 사도는 배교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 편지 수신자들이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 ‘구원에 가까운 것’이라는 원어(에코메나 소테리아스)는 ‘구원에 수반하는 것들’이라는 뜻이죠(KJV, NASB, NIV). 그것은 그들에게 구원에 수반하는 행위의 열매들이 있다는 뜻이죠.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의 영적 미성숙을 책망하며 배교를 경고했지만, 실상 참 믿음에 거하는 자들 속에는 좋은 그리고 선한 행위의 열매들이 있음을 확신한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셔서 그들의 행위와 그들이 성도들을 섬긴 것을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의 수고로 성도들을 섬겼고 또 섬기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성도들을 섬기는 행위로 표현되었죠. 사람들은 우리의 진심이나 사랑의 수고를 잘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11-12]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저자의 간절한 소원은, 1)첫째로, 이 서신을 받는 수신자들이 다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는 것이었어요. ‘너희 각 사람이’라는 말은 이 권면의 말씀이 교회의 모든 사람이 그리 되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2)둘째로, 성도들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다. ‘소망의 풍성함’이라는 원어는 ‘소망의 충만한 확신 ’이라는 뜻이죠. 성도들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에 대함입니다.

3)셋째로, 성도는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을 본받는 자가 되야 합니다.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살았고 마침내 약속들의 성취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받은 약속들이란, 죽은 후에 그들의 영혼들이 들어간 천국과 거기에서의 영원한 안식의 축복입니다.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약속

[13-15]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받았음이니 라]-고 했어요.

본문은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은 자의 예로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처음 주신 것은 하란에서였죠. 그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죠( 12:4). 아브라함이 오래 참았다는 것은 이 75세부터 그가 이삭을 아들로 받았 던 100세까지, 25년 간의 세월을 말합니다. 그것은 긴 시간이었어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25년 간을 의심커나 낙심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오래 참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약속을 주셨어요. 그래서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 리 ”고 하셨으니, 곧 메시아로 말미암은 구원의 축복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16-18]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며 말씀하심으로 그 약속을 보증하셨죠( 22:16-18).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은 1)첫째로 그의 약속하심 자체이며, 2)둘째로 그의 맹세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확실한 약속을 주시는 까닭은 하나님께 서 주신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로 큰 안위(혹은 확신, 요동치 아니함)를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19-20]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어요.

성도의 소망은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아야 합니다. ‘휘장’이라는 말(카타페타스 마)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여 막아 가르는 휘장을 가리키죠( 9:3). 휘장 속으로 들어가 는 것은 사람이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께서는 이미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셨으므로, 우리의 소망은 더욱 견고하다고 보았습니다.
 

결론)

히브리서 6장의 교훈 3가지는?

 1)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들을 넘어서서 완전한 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들은 회개, 믿음, 세례, 죽은 자들의 부활, 심판 등인데 ‘완전한 데’라는 말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알고 믿고 확신하여 실천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둘째로, 우리는 배교에 떨어져선 안 됩니다. 배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주 떠나는 것이며 구원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초보적 말씀을 아예 믿지 않는 것이 죠. 그것은 신앙의 변질이며 멸망의 근거가 됩니다.

3)셋째로, 우리는 불변의 부지런함으로 선을 행하고 확실한 소망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친히 맹세로 주신 확실한 약속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확실하게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011723 안익선 목사 / 참조: 김효성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