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후서

베드로 전후서 서론

호걸영웅 2023. 5. 18. 22:30

베드로 서 서론



먼저 서론부인 1~12절만을 교독합니다.

 

)베드로 전서 서론

 

1. 표제(제목)
최초기의 헬라어 필사본들에서 이 편지서의 표제는 단순히 “베드로의 I(Petrou A)이라고 되어 있다. 「제임스왕역」의 이 책 표제에 덧붙여 있는 “Epistle General (“일반 편지 서” 또는 “공동 서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편지가 어느 한 개인이나 단지 한 회중 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전역에 산재해 있는 전반적인 교회들에게,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모든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임을 읨한다고 할수 있습니다(참조 1:1 주석). 바로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 전후서는“공동 서신”(General Epistle)으로 일컬어집니다.


2. 기록자
이 베드로가 썼다는 편지는 베드로가 저자로 되어 있습니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이 편지를 기록했다고 가르치는 여러 가지 이론이 실제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제시되는 이름은 실루아노(5: 12)입니다.

 

베드로의 저술임을 부정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베드로와 같은 제한된 교육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 비추어 이 편지서의 헬라어는 너무나 유창하고 우아하다. (2) 이 편지서의 신학은 베드로의 신학보다는 바울의 그것을 더 많이 닮았다. (3)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밀했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4)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교회들과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소아시아 교인들에 편지를 썼을 리 없다. 등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에 대한 반론 4가지가 있습니다.  

(1)우선 헬라어가 유창하고 우아하다는 사실은 필경 베드로의 서기로 봉사했던 실루아노 ( 5:12)가 이 편지서에 쓰인 헬라어의 격조를 높였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2)다음으로 어휘와 표현의 사용법에서 이 편지서는 베드로의 설교들 및 그의 개인적 사역의 특성들과 유사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3)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기를 베드로가 썼더라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썼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지레 짐작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4)네 번째는 이미 앞에서도 논평한 바대로 부정하는 이유들은 단순히 하나의 가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베드로서의 저자는 베드로임을 지지합니다.


3. 수신자와 역사적 배경
베드로 사도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회람용(돌려보게 하기 위한 용도) 편지로서 이 편지서를 기록하였습니다.(당시 트루키에의 지도  참조). 이 다섯 지방은 오늘날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불리는 지역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였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신자들 중 대다수는 이방인들이었으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다고 추정합니다. 그들의 임명 받은 선교사로서( 2:9) 베드로는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는 이곳 교회들 중에 소수 집단인 그들에게만 한정해서 그의 인사 와 교훈을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그의 독자들을 일컬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고 한 것과 우상숭배를 하다가 개종한 자들이라고 한 것 등으로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참조 벧전 2:10; 4:3, 4).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이 교회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한 사람 인 이 베드로 사도는, 교인들이 유대인 출신이든 이방인 출신이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보고 그들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음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이 편지서의 기록 연대는 확실하게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편지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바대로(참조 5:13 주석)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 사도의 생애가 거의 끝날 무렵에 기록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기록한 편지들 가운데 베드로가 그 도시에 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바울이 최후에 체포된 때”(사도행적, 527, 537,)까지, 다시 말해서 AD 66년경까지는 베드로가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의 연대는 대략 AD 60년 중반이 그 편지서의 기록 시기가 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편지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태도가 당시에 존재함을 반영하고 있기에 AD 64년에 시작된 네로(Nero)의 박해 때가 이 서신의 기록 연대가 아닐까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주제
베드로가 이 편지서를 기록할 때, 그의 심중에는 목회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면이 주어지던 당시의 배경은 핍박의 위험, 임박한 “불시험”(4:12), 그리고 신자들이 처해 있던 환난의 시기에 대한 의식 등으로 불안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그는 성도 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그들을 권하여 흠이 없는 행위와 모범적인 시민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 를 위하여 충성된 증인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이 예수님을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준비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목적들을 달성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그는 사환들(2:18)과 아내들(3:1~6)과 남편들(3:7)과 장로들(5:1~4)과 젊은이들(5:5~9)을 위한 특별한 권면을 이 편지서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편지서 전체를 통하여 부드럽고 자애로운 정신이 확고한 지도자적 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둘이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숭고한 개념(사상, 신념 등)으로 말미암아 묘사되고 있습니다.


5. 개요
. 서론, 1:1~12
A. 인사, 1:1, 2
B. 구원에 대한 찬양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돌림, 1:3~9
C. 구원에 대한 선지자들과 천사들의 태도, 1:10~12

. 확고부동한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권면 9가지, 1:13~4:19
A. 높은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1:13~25
B. 지식과 그리스도인 성숙이 증가해야 함, 2:1~8
C.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이방인들 가운데 모범적인 생애를 살라, 2:9~18
D. 그리스도처럼 고난 중에서도 온유하라, 2:19~25
E. 남편들과 아내들에 대한 권면, 3:1~7
F. 연합을 위한 격려, 3:8~13
G.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의 특권과 보상, 3:14~22
H.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를 제어하라는 호소, 4:1~6
I. 근신하고 관대한 생활을 하라는 호소, 4:7~11

 

)베드로후서 서론

 

     1. 기록자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내외적 증거가 많습니다. 본서의 1:1 "예수 그리스도 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고, 1:14에는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1:18-19). 또 저자는 1:16-17에서 자신이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한 사건을 목격한 제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7:5, 9:7). 3:1에 언급된 '둘째 편지'라는 문구는 저자가 첫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가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 (Eusebius),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어거스틴(Augustine), 시릴(Cyril) 등의 교부들이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2. 수신자

   1:1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대상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3:1 "사랑 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고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베드로전 서의 수신자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벧전1:1).  

 

     3. 기록 연대

   본서가 기록된 때는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A.D.64년 경부터 베드로가 순교했던 A.D.68년 경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가 로마 네로 황제의 집권 말기(A.D.64-68년 경)에 박해받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것이므로 그 기록 연대를 A.D.66-67년 경으로 좁혀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기록 장소

   본서의 기록 장소는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드로전서의 기록 장소는 '바벨론'으로 나와 있습니다 (벧전5:13). 여기에서 사용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Origen, Tertullian). 성경의 묵시문학에서는 흔히 실제명이 아닌 상징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을 로마로 사용했습니다 (17:5, 18:2).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일곱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실제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계시록 17 9절에 보면 음녀(정권과 결탁한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의 바벨론 도시가 어디인지 단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산이요라고 했습니다. 곧 음녀는 바티칸을 의미한다는 예언입니다.

 

예로부터 일곱언덕의 도시는 로마의 별칭이었습니다.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되었으며

그리고 BC 509년에 로마가 위치한 일곱언덕중의 가장 높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유피테르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로마의 일곱언덕은 로마의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일곱언덕은 카피톨리노 언덕, 팔라티노 언덕, 첼리오 언덕, 에스퀼리노 언덕, 비미날레 언덕, 퀴리날레 언덕, 아벤티노 언덕-입니다.

 

 

     5. 기록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고난 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를 다룬 반면 본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난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배교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하고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6. 본서의 특징

   본서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본서는 내용에 있어서 유다서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교사에 대한 내용은 많이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전개는 1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한 권면을, 2장에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와 정죄,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 050223 안익선 목사

베드로 서 서론



먼저 서론부인 1~12절만을 교독합니다.

 

)베드로 전서 서론

 

1. 표제(제목)
최초기의 헬라어 필사본들에서 이 편지서의 표제는 단순히 “베드로의 I(Petrou A)이라고 되어 있다. 「제임스왕역」의 이 책 표제에 덧붙여 있는 “Epistle General (“일반 편지 서” 또는 “공동 서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편지가 어느 한 개인이나 단지 한 회중 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전역에 산재해 있는 전반적인 교회들에게,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모든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임을 읨한다고 할수 있습니다(참조 1:1 주석). 바로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 전후서는“공동 서신”(General Epistle)으로 일컬어집니다.


2. 기록자
이 베드로가 썼다는 편지는 베드로가 저자로 되어 있습니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이 편지를 기록했다고 가르치는 여러 가지 이론이 실제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제시되는 이름은 실루아노(5: 12)입니다.

 

베드로의 저술임을 부정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베드로와 같은 제한된 교육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 비추어 이 편지서의 헬라어는 너무나 유창하고 우아하다. (2) 이 편지서의 신학은 베드로의 신학보다는 바울의 그것을 더 많이 닮았다. (3)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밀했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4)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교회들과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소아시아 교인들에 편지를 썼을 리 없다. 등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에 대한 반론 4가지가 있습니다.  

(1)우선 헬라어가 유창하고 우아하다는 사실은 필경 베드로의 서기로 봉사했던 실루아노 ( 5:12)가 이 편지서에 쓰인 헬라어의 격조를 높였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2)다음으로 어휘와 표현의 사용법에서 이 편지서는 베드로의 설교들 및 그의 개인적 사역의 특성들과 유사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3)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기를 베드로가 썼더라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썼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지레 짐작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4)네 번째는 이미 앞에서도 논평한 바대로 부정하는 이유들은 단순히 하나의 가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베드로서의 저자는 베드로임을 지지합니다.


3. 수신자와 역사적 배경
베드로 사도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회람용(돌려보게 하기 위한 용도) 편지로서 이 편지서를 기록하였습니다.(당시 트루키에의 지도  참조). 이 다섯 지방은 오늘날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불리는 지역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였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신자들 중 대다수는 이방인들이었으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다고 추정합니다. 그들의 임명 받은 선교사로서( 2:9) 베드로는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는 이곳 교회들 중에 소수 집단인 그들에게만 한정해서 그의 인사 와 교훈을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그의 독자들을 일컬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고 한 것과 우상숭배를 하다가 개종한 자들이라고 한 것 등으로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참조 벧전 2:10; 4:3, 4).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이 교회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한 사람 인 이 베드로 사도는, 교인들이 유대인 출신이든 이방인 출신이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보고 그들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음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이 편지서의 기록 연대는 확실하게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편지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바대로(참조 5:13 주석)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 사도의 생애가 거의 끝날 무렵에 기록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기록한 편지들 가운데 베드로가 그 도시에 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바울이 최후에 체포된 때”(사도행적, 527, 537,)까지, 다시 말해서 AD 66년경까지는 베드로가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의 연대는 대략 AD 60년 중반이 그 편지서의 기록 시기가 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편지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태도가 당시에 존재함을 반영하고 있기에 AD 64년에 시작된 네로(Nero)의 박해 때가 이 서신의 기록 연대가 아닐까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주제
베드로가 이 편지서를 기록할 때, 그의 심중에는 목회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면이 주어지던 당시의 배경은 핍박의 위험, 임박한 “불시험”(4:12), 그리고 신자들이 처해 있던 환난의 시기에 대한 의식 등으로 불안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그는 성도 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그들을 권하여 흠이 없는 행위와 모범적인 시민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 를 위하여 충성된 증인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이 예수님을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준비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목적들을 달성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그는 사환들(2:18)과 아내들(3:1~6)과 남편들(3:7)과 장로들(5:1~4)과 젊은이들(5:5~9)을 위한 특별한 권면을 이 편지서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편지서 전체를 통하여 부드럽고 자애로운 정신이 확고한 지도자적 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둘이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숭고한 개념(사상, 신념 등)으로 말미암아 묘사되고 있습니다.


5. 개요
. 서론, 1:1~12
A. 인사, 1:1, 2
B. 구원에 대한 찬양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돌림, 1:3~9
C. 구원에 대한 선지자들과 천사들의 태도, 1:10~12

. 확고부동한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권면 9가지, 1:13~4:19
A. 높은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1:13~25
B. 지식과 그리스도인 성숙이 증가해야 함, 2:1~8
C.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이방인들 가운데 모범적인 생애를 살라, 2:9~18
D. 그리스도처럼 고난 중에서도 온유하라, 2:19~25
E. 남편들과 아내들에 대한 권면, 3:1~7
F. 연합을 위한 격려, 3:8~13
G.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의 특권과 보상, 3:14~22
H.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를 제어하라는 호소, 4:1~6
I. 근신하고 관대한 생활을 하라는 호소, 4:7~11

 

)베드로후서 서론

 

     1. 기록자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내외적 증거가 많습니다. 본서의 1:1 "예수 그리스도 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고, 1:14에는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1:18-19). 또 저자는 1:16-17에서 자신이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한 사건을 목격한 제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7:5, 9:7). 3:1에 언급된 '둘째 편지'라는 문구는 저자가 첫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가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 (Eusebius),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어거스틴(Augustine), 시릴(Cyril) 등의 교부들이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2. 수신자

   1:1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대상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3:1 "사랑 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고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베드로전 서의 수신자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벧전1:1).  

 

     3. 기록 연대

   본서가 기록된 때는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A.D.64년 경부터 베드로가 순교했던 A.D.68년 경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가 로마 네로 황제의 집권 말기(A.D.64-68년 경)에 박해받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것이므로 그 기록 연대를 A.D.66-67년 경으로 좁혀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기록 장소

   본서의 기록 장소는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드로전서의 기록 장소는 '바벨론'으로 나와 있습니다 (벧전5:13). 여기에서 사용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Origen, Tertullian). 성경의 묵시문학에서는 흔히 실제명이 아닌 상징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을 로마로 사용했습니다 (17:5, 18:2).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일곱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실제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계시록 17 9절에 보면 음녀(정권과 결탁한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의 바벨론 도시가 어디인지 단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산이요라고 했습니다. 곧 음녀는 바티칸을 의미한다는 예언입니다.

 

예로부터 일곱언덕의 도시는 로마의 별칭이었습니다.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되었으며

그리고 BC 509년에 로마가 위치한 일곱언덕중의 가장 높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유피테르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로마의 일곱언덕은 로마의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일곱언덕은 카피톨리노 언덕, 팔라티노 언덕, 첼리오 언덕, 에스퀼리노 언덕, 비미날레 언덕, 퀴리날레 언덕, 아벤티노 언덕-입니다.

 

 

     5. 기록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고난 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를 다룬 반면 본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난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배교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하고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6. 본서의 특징

   본서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본서는 내용에 있어서 유다서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교사에 대한 내용은 많이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전개는 1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한 권면을, 2장에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와 정죄,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 050223 안익선 목사

베드로 서 서론



먼저 서론부인 1~12절만을 교독합니다.

 

)베드로 전서 서론

 

1. 표제(제목)
최초기의 헬라어 필사본들에서 이 편지서의 표제는 단순히 “베드로의 I(Petrou A)이라고 되어 있다. 「제임스왕역」의 이 책 표제에 덧붙여 있는 “Epistle General (“일반 편지 서” 또는 “공동 서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 편지가 어느 한 개인이나 단지 한 회중 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전역에 산재해 있는 전반적인 교회들에게,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모든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임을 읨한다고 할수 있습니다(참조 1:1 주석). 바로 이러한 이유로 베드로 전후서는“공동 서신”(General Epistle)으로 일컬어집니다.


2. 기록자
이 베드로가 썼다는 편지는 베드로가 저자로 되어 있습니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이 편지를 기록했다고 가르치는 여러 가지 이론이 실제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제시되는 이름은 실루아노(5: 12)입니다.

 

베드로의 저술임을 부정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베드로와 같은 제한된 교육적 배경을 가진 사람에 비추어 이 편지서의 헬라어는 너무나 유창하고 우아하다. (2) 이 편지서의 신학은 베드로의 신학보다는 바울의 그것을 더 많이 닮았다. (3) 베드로처럼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밀했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4) 베드로는 소아시아의 교회들과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소아시아 교인들에 편지를 썼을 리 없다. 등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에 대한 반론 4가지가 있습니다.  

(1)우선 헬라어가 유창하고 우아하다는 사실은 필경 베드로의 서기로 봉사했던 실루아노 ( 5:12)가 이 편지서에 쓰인 헬라어의 격조를 높였기 때문일 것으로 본다.

(2)다음으로 어휘와 표현의 사용법에서 이 편지서는 베드로의 설교들 및 그의 개인적 사역의 특성들과 유사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3)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기를 베드로가 썼더라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썼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지레 짐작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4)네 번째는 이미 앞에서도 논평한 바대로 부정하는 이유들은 단순히 하나의 가정이기 때문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상당수의 주석가들은 베드로서의 저자는 베드로임을 지지합니다.


3. 수신자와 역사적 배경
베드로 사도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회람용(돌려보게 하기 위한 용도) 편지로서 이 편지서를 기록하였습니다.(당시 트루키에의 지도  참조). 이 다섯 지방은 오늘날 소아시아(Asia Minor)라고 불리는 지역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였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교회들의 신자들 중 대다수는 이방인들이었으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소수였다고 추정합니다. 그들의 임명 받은 선교사로서( 2:9) 베드로는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관심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는 이곳 교회들 중에 소수 집단인 그들에게만 한정해서 그의 인사 와 교훈을 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그의 독자들을 일컬어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고 한 것과 우상숭배를 하다가 개종한 자들이라고 한 것 등으로 미루어 알 수가 있습니다(참조 벧전 2:10; 4:3, 4).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그들이 교회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고 주장한 사람 인 이 베드로 사도는, 교인들이 유대인 출신이든 이방인 출신이든 간에 모든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보고 그들을 부르는 호칭에서도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았음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이 편지서의 기록 연대는 확실하게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편지는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바대로(참조 5:13 주석)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그 사도의 생애가 거의 끝날 무렵에 기록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기록한 편지들 가운데 베드로가 그 도시에 있다는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바울이 최후에 체포된 때”(사도행적, 527, 537,)까지, 다시 말해서 AD 66년경까지는 베드로가 그곳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전서의 연대는 대략 AD 60년 중반이 그 편지서의 기록 시기가 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편지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비우호적인 태도가 당시에 존재함을 반영하고 있기에 AD 64년에 시작된 네로(Nero)의 박해 때가 이 서신의 기록 연대가 아닐까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주제
베드로가 이 편지서를 기록할 때, 그의 심중에는 목회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권면이 주어지던 당시의 배경은 핍박의 위험, 임박한 “불시험”(4:12), 그리고 신자들이 처해 있던 환난의 시기에 대한 의식 등으로 불안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서 그는 성도 들의 믿음을 강화하고 그들을 권하여 흠이 없는 행위와 모범적인 시민 생활을 하며, 그리스도 를 위하여 충성된 증인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이 예수님을 떳떳이 만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준비하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목적들을 달성하도록 도와주기 위하여 그는 사환들(2:18)과 아내들(3:1~6)과 남편들(3:7)과 장로들(5:1~4)과 젊은이들(5:5~9)을 위한 특별한 권면을 이 편지서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편지서 전체를 통하여 부드럽고 자애로운 정신이 확고한 지도자적 의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둘이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숭고한 개념(사상, 신념 등)으로 말미암아 묘사되고 있습니다.


5. 개요
. 서론, 1:1~12
A. 인사, 1:1, 2
B. 구원에 대한 찬양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돌림, 1:3~9
C. 구원에 대한 선지자들과 천사들의 태도, 1:10~12

. 확고부동한 그리스도인 생활에 대한 권면 9가지, 1:13~4:19
A. 높은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1:13~25
B. 지식과 그리스도인 성숙이 증가해야 함, 2:1~8
C.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이방인들 가운데 모범적인 생애를 살라, 2:9~18
D. 그리스도처럼 고난 중에서도 온유하라, 2:19~25
E. 남편들과 아내들에 대한 권면, 3:1~7
F. 연합을 위한 격려, 3:8~13
G.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의 특권과 보상, 3:14~22
H.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를 제어하라는 호소, 4:1~6
I. 근신하고 관대한 생활을 하라는 호소, 4:7~11

 

)베드로후서 서론

 

     1. 기록자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내외적 증거가 많습니다. 본서의 1:1 "예수 그리스도 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고, 1:14에는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1:18-19). 또 저자는 1:16-17에서 자신이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한 사건을 목격한 제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17:5, 9:7). 3:1에 언급된 '둘째 편지'라는 문구는 저자가 첫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가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 (Eusebius),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어거스틴(Augustine), 시릴(Cyril) 등의 교부들이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2. 수신자

   1:1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대상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3:1 "사랑 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고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베드로전 서의 수신자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벧전1:1).  

 

     3. 기록 연대

   본서가 기록된 때는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A.D.64년 경부터 베드로가 순교했던 A.D.68년 경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가 로마 네로 황제의 집권 말기(A.D.64-68년 경)에 박해받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것이므로 그 기록 연대를 A.D.66-67년 경으로 좁혀 추정할 수 있습니다.

 

     4. 기록 장소

   본서의 기록 장소는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드로전서의 기록 장소는 '바벨론'으로 나와 있습니다 (벧전5:13). 여기에서 사용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Origen, Tertullian). 성경의 묵시문학에서는 흔히 실제명이 아닌 상징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을 로마로 사용했습니다 (17:5, 18:2).  그리고 요한 계시록은 일곱개의 언덕이 있는 도시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실제 로마는 7개의 언덕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계시록 17 9절에 보면 음녀(정권과 결탁한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의 바벨론 도시가 어디인지 단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혜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산이요라고 했습니다. 곧 음녀는 바티칸을 의미한다는 예언입니다.

 

예로부터 일곱언덕의 도시는 로마의 별칭이었습니다. 로마는 BC 753년에 건국되었으며

그리고 BC 509년에 로마가 위치한 일곱언덕중의 가장 높은 카피톨리노 언덕에 유피테르 (쥬피터) 신전이 세워졌고 로마의 일곱언덕은 로마의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로마의 일곱언덕은 카피톨리노 언덕, 팔라티노 언덕, 첼리오 언덕, 에스퀼리노 언덕, 비미날레 언덕, 퀴리날레 언덕, 아벤티노 언덕-입니다.

 

 

     5. 기록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고난 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를 다룬 반면 본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난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배교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하고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6. 본서의 특징

   본서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본서는 내용에 있어서 유다서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교사에 대한 내용은 많이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전개는 1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한 권면을, 2장에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와 정죄,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

 

050223 안익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