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후서

베드로전서 2장 강해(보배로운 산 돌 예수와 성도들의 행실에 대해)

호걸영웅 2023. 5. 18. 22:32

베드로전서 2장 강해(보배로운 산 돌 예수와 성도들의 행실에 대해)

 

서론)

본문은 1)예수님이 누구신가와 2)성도의 바른 삶에 대한 권면을 3가지 정도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론)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그를 붙잡아 고문했고, 로마시대에 극악무도한 죄인들을 죽이는 사형 방법인 십자가에 예수님을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2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라고 했어요.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보배로운 산 돌’이란 무슨 뜻일까요?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은 보배시다 라는 것이죠.


이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산 돌’(a living stone), 즉 ‘살아 있는 돌’이라고 했을 때 ‘살아 있다’고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서 처형했으나,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하여 지금까지도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살아 있는 돌’이라고 이야기했을까요?

교회를 하나의 큰 건물로 비유하여 벽돌로 집이나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돌이 있듯이, 베드로는 예수를 가장 교회의 기초가 되는 ‘모퉁이 돌’로 삼으셨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6절 말씀=(벧전 2:6) 성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 고 했죠.

 

)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 반응과 두 가지 결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람들의 두 가지 반응이 있으며, 각각의 반응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도 그들에게 다른 두 가지 결과를 가지고 오신다고 이야기합니다.

 

1)먼저 예수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 주실까요?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라 하십니다.즉 하나님 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모퉁이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부끄 러움울 당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 것이 결단코 헛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그 날, 부끄러움 당하지 않고 최후의 심판 때에 당당하게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이사야 28 16= (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어요.

여기서 ‘급절하게 되지 아니한다’는 말은 ‘조급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곧 예수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자로 받아들이고 저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잠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이나 어려움으로 염려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고,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궁극적으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반대로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를 역사에 존재했던 실존 인물이 아니라, 허구적인 상상 속 만들어진 인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가 사기꾼이거나 나사렛 이단 집단의 거짓말쟁이 교주 즈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부인한 사람들, 예수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7-8절 말씀입니다.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했죠.

 

건축가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해 버린 돌과 마찬가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아무 쓸데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건축자들에게 버려진 돌과 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버려진 예수님을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모퉁이 돌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분은 8절 말씀처럼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셨습니다. 이 표현은 베드로가 이사야 8장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사야 8 13-15=“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 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 8:15)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했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은 그를 두려워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안전한 피난처, 거룩한 피할 곳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 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따르지 않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두 집, 즉 예수를 박해하거나 거절한 사람들이나 단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돌과 거치는 함정, 올무가 되셔서 그들을 반드시 패망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죠(예;사두개파와 바리새파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이 넘어지게 하는 함정, 올무, 그리고 정죄의 근거와 심판의 돌이 되십니다.

)성도들의 정체성과 사명
이어서 베드로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먼저

성도의 정체성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9절입니다. “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했어요.

베드로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성도를 4가지로 소개합니다.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입니다.  4가지 표현은 베드로가 출애굽기 19장에서 가지고 온 말씀입니다. (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며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주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며 살아가면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제사장 , 거룩한 나라(민족) ,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에 대해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엄청난 복과 특권을 주신 이유는 한 마디로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한 복음 전파’입니다. 따라서 성도에게 전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전도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의무’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사도 베드로는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리가 천국으로 영원히 이민 갈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내용을 권면합니 다. 하나는 내면적인 권면이고, 다른 하나는 외면적인 권면입니다. 내면적으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 외면적으로는 선한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1)첫째로, 사도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면합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했죠?  ‘육체의 정욕이 무엇인가?’ ‘세속적인 욕구나 목표’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면, “하나님 밖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는 인간의 세속적인 욕구와 욕망들”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육체의 정욕’을 ‘sinful desires’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욕망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제어하다’란 말은 ‘중단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공장의 가동을 당장 멈추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황금 만능주의시대’ 혹은 ‘물질 만능주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더 많이 갖고 소유하기 위해 온갖 힘을 쓰며 돈을 좇아 살아갑니다. 돈벌이가 된다면 양심을 속이는 일이나, 비도덕적인 일이나, 타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도 무엇이든 하겠다는 삶의 방식과 태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의 더욱 안락한 삶을 위해 명예, 권력, 학력, 재력을 가지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등한시하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바로 육체의 욕망입니다. 바로 그런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제어하자, 제어하자,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 자”하고 그렇게 마음으로 수백 번 결단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요. 사람의 마음이란 작심삼 일입니다. 아니 하루에도 수없이 뒤집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 16절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 심을 받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말씀을 늘 상고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골방기도와 같은 깊은 기도시간이 필요합니다. 늘 말씀으로 영혼을 배부르게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2) 둘쨰로 사도 베드로는 선한 행실을 실천하라 권면합니다.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2절을 보니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이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 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활동하던 1세기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이들에게 악한 사람들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갔기 때문에, 로마 황제를 향한 반역 세력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를 왕으로 섬기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칭할 때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사람들! 로마 황제의 명을 거역하여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7:6).

 

두 번째 이유는 교회의 성만찬이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만찬 때 모여 빵과 잔을 나눕니다. 빵을 나누며 “이것은 우리 주님의 몸입니다.” 하고 말하고, 포도주 잔을 나누며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흘리신 피입니다.”하고 말합니다. 물론 빵과 잔은 예수 님의 몸과 잔을 상징하여 기념할 뿐, 실제 주님의 몸과 피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만찬이 사람들의 오해를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잔인한 야만인들, 불순집단, 사이비 집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이유로 이방인들은 계속해서 교회를 비방했고, 성도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이 이방인들에게 무고한 비방을 받는 상황 속에서 오늘 이 말씀을 권면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악한 자라는 오해를 받고 있으나, 그들 중에서 선한 행실을 함으로써 오해를 풀고, 성도들의 선행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도록 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들을 대적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선한 행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믿지 않는 자들이 ‘과연 저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셔서 선하게 살아가게 하시는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라고 감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나그네, 즉 외국인 체류자들입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그날 우리 모두는 하늘 본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부터 하나님 나라로 다시 이민 갈 준비를 잘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십시오.

둘째, 주어진 일상 속에서 선한 행실을 하십시오.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리할 때 세상 속에서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051623 안익선 목사/참조: 코너스톤 교회 말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