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후서

베드로 전서 3장 강해(선행에 힘써야 할 성도)

호걸영웅 2023. 7. 11. 08:32

베드로 전서 3장 강해(선행에 힘써야 할 성도)

 

서론)

벧전 3장은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양심과 믿음에 대한 증거와 거룩함을 늘 지키며 살아가야 하고 또 우리는 죄가 없으셨으나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선을 행하면서 고난 받기를 두려워 말자-는 교훈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본론)

)아내들과 남편들에 대한 교훈1-7,

[1-2]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했어요.

‘순복하다’는 ‘순종하다, 복종하다’는 의미이죠.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에서 “아내들 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 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하였고( 5:22-23), 또 골로새서에서도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말했어요( 3:18).

바울 당시 시대적 상황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였기에 했던 말씀입니다. 고로 아내들이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해야 할 목적은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 즉 믿지 않는 남편이 라도 아내의 말로가 아니고 그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 다. 그것은 말로 구원하기 힘든 남편들이 그 아내의 행위에 감동을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남편을 구원시킬 아내의 행위는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말합니다.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남편을 두려워함을 다 포함합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아내들은 자기 남편들을 자기 주인과 같이 생각하여 두려워함으로 순종해야 하고 성적으로도 순결하여야 합니다.

 

[3-6]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의 선한 인격은 그들의 외적 단장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꾸미고 금은보석의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차고 값비싼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 같은 외적인 단장에 치중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머리를 꾸민다’는  ‘땋은 머리’라는 뜻인데, 이 말씀 은, 머리 단장이 죄악이므로 머리 단장을 도무지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라 씻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또 금은보석의 장신구들과 아름다운 옷들도 그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지만 단지, 성도들은 외적 단장에 시간과 돈을 많이 쓰며 사치 낭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외적 단장은 가치가 극히 작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에, 아내들의 단장은 내면적이어야 합니다. ‘마음의 숨은 사람’은 사람의 내면적 인격성을 가리켜요. 여인의 내면적 인격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되어야 하죠. ‘안정한’이라는 원어는 ‘조용한’이라는 뜻이죠. 여자 성도들은 온유하고 조용한 심령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은 세월이 갈수록 쇠해지지만, 이러한 고상한 인격과 믿음은 썩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값지죠. 6절 하반절의 그의 딸이 된 것이라=그녀의 딸, 곧 사라의 믿음을 계승한 딸-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You are her daughters 라고 했습니다.

 

[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했죠.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의 의무를 교훈 한 후, 남편들의 의무도 교훈합니다. 남편들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지식을 따라 아내들과 동거해야 하죠. 결혼은 남녀가 연합하여 한 인격처럼 사는 것이요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입니다.

 

결혼의 세 가지 목적은 1)첫째, 남녀가 외롭지 않도록 함께 살게 하기 위함이며( 2:18), 2)둘째, 자녀 출산을 위함이며( 1:27-28), 3)셋째, 음행의 방지를 위함입니다(고전 7:2).

결혼에 있어서 남편의 의무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남편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하였습니다( 5: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사랑은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남편들도 그런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으로 아내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들의 따뜻한 말 한 마디와 얼굴 표정과 행위는 단조로운 집안 일로 피곤한 아내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것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라(8-12),

[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친절하며](전통사본)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했죠?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몇 마디 권면을 좀더 추가시키게 됩니다.

1)  첫째로, 그는 우리에게 다 마음을 같이하라고 권면하였다. 성도들의 교제는 생각의 일치에서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2:16, “서로 마음[생각]을 같이하며.” 고린도전서 1:10, “같은 마음[생각]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빌립보서 2:2, “마음[생각]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생각]을 품어.

= 생각이 서로 같아야 하나님을 함께 화평 가운데 섬길 수 있습니다. 생각이 서로 다르면 다투고 분열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이 하나 되도록 힘써야 한다.

2)둘째로, 그는 우리에게 서로 체휼하라고 권면하였다. ‘체휼하다’는 원어(쉼파테스)는 ‘같은 감정을 가지다, 동정심(同情心)을 가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생각이 첫째로 중요하지만, 또 감정도 중요합니다. 감정이 같은 것이 더 좋습니다. 어떤 이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그것을 싫어하면 서로 사랑으로 단합하기 어렵습니다.

3)셋째로, 그는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기본적인 덕목이죠.

예수께서는 친히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 13:4-7)에서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

4)넷째로, 그는 우리에게 남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즉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부족과 연약을 볼 때 멸시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자비로운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도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어요( 4:32).

5)다섯째로, 그는 우리에게 겸손(혹은 친절)하라고 권면합니다. 겸손함과 친절함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겸손하고 친절해야 합니다.

6)여섯째로, 그는 우리에게 남에게 보복하지 말라 했어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고( 5:39)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어요( 5:44 ). 사도 바울도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교훈했습니다( 12:17).

 

[10-12]=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천국의 좋은 날들 보기를 원해야 합니다.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놀라운 하늘나라의 세계를 바랄진대, 거기에 합당한 자들답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먼저는 우리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쳐야 합니다. 또 우리는 입술로 궤휼 즉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궤휼은 남을 헐뜯는 말들입니다.

성도는 서로 간에 화목을 구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4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했어요.

 

)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으라(13-17)

[13-14]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 했죠?

예수를 믿는 자들은 선하신 예수를 본받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선하게 살면, 양심이 있는 자들은 그런 우리를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의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 때문에 고난을 받는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10). 그때 우리는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현세와 내세의 확실한 약속과 보장이 있기 때문이죠.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모셔야 할 주님이십니다. 주님이라 함은 절대주권자와 섭리자로 삼아 섬기라는 뜻이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임의로 다스리시되 사람들을 공의로 통치하시고 악인들에게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의 위협과 핍박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자에게 대답할 바를 온유와 두려움 으로 항상 예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령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밝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천국 소망은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요 은혜와 전도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증과 복음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16-17]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 했으니 즉 보상이 있다는 읨입니다. 그것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당연히 훨씬 낫습니다.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당연히 받을 고난이지만,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룹니다. 예수께서와 사도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고난을 각오하며 살아야 합니다.

)18-22,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에 대한 증거

[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성령]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 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한 번 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심이요 하나님과의 화목케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합니다.

여기서‘옥에 있는 영들’은 다음절의 말씀대로 노아 시대에 홍수 이후로 멸망당한 모든 자들 의 영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영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와 구원의 능력과 사탄과 죄를 이기심과 그의 부활과 심판을 전하셨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20]= 생략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했어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의 물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는 표가 되는 침례에 비교할 수 있죠. 침례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사는 것을 상징하고 확증합니다.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했죠?

본문은 예수님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계심을 증거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심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증거하는 바이죠.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 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사도행전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로마서 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등등입니다.

 

결론)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양심과 믿음에 대한 증거와 거룩함을 늘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죄가 없으셨으나 우리의 죄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도 선을 행하면서 고난 받기를 두려워 말아야 합니다.
                                    

                                 052323 안익선 목사/ 참조:옛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