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후서

베드로전서 4장 강해(고난과 성도의 각오)

호걸영웅 2023. 7. 11. 08:34

베드로전서 4장 강해(고난과 성도의 각오)

 

<서론>

벧전 4장은 3장에 이어 성도의 고난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도가 불신앙적 사회에서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당연히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당할 때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인내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본 장의 내용 구조 및 단락은 1)고난의 의의 (1-6), 2)말세를 당한 성도의 자세 (7-11), 3)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의 의미 (12-19)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론>

      )고난의 영적 의미 (1-6)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성도로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영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불신앙 세상에서 살아갈 때 발생하는 문제는 세속화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 들에게도 끊임없는 세속적 유혹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것을 이기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비방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절上).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있다 했습니다 (딤후3:12).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고 했습니다 (1절下). 사람은 고난을 받을 때 죄가 그쳐지는 면이 있습니다. 죄성이 강하기 때문에 습관적인 죄는 죽을 지경에 이르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고난은 죄를 그치게 합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난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고난을 받으면 죄의 세력을 이기는 권세가 생깁니다. 영적 전투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죄를 이기는 능력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옛 어른들 말씀에도 '일일불염선(一日不念善)이면 제악(諸惡)이 개자기(皆自起)'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사람이라 하여도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다 스스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겪게 하신 것은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입니다 (2). 믿기 전에는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했습니다. 그런 삶은 믿기 전에 한 번 살았던 것으로 족하다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때로 불신자들을 따라 살지 않으므로 그들로부터 비방을 받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함께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고 차별화하고 미워하며 비방합니다 (4). 그러나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직고하게 됩니다 (5).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 있는 자이든 죽어 있는 자이든 심판을 할 텐데 그 때에는 모두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게 됩니다. 로마서14:2에는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한다고 했습니다. 불신자들이 방탕한 삶을 산 죄와 방탕하기를 거부한 자 자를 비방하고 모욕한 죄를 낱낱이 아뢰게 된다는 것입니다.

 

  ) 말세를 당한 성도의 자세 (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라고 했죠?

 

  '만물의 마지막'은 예수의 재림 때를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으므로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이 낙심하지 말고 소망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7)

   7절은 성도는 환경에 휩쓸리거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도생활을 해야 한다 했습니다. 기도생활을 해야 분별력이 생기고 고난을 견딜 수 있고 유혹을 이기게 되고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고 베드로전서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고 했습니다. 누가복음22:40에는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하루에 2시간 이상 기도했고 다니엘은 하루에 3번 기도하고 예수님은 새벽 미명이나 밤 중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열심히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8)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랑이 식어집니다 (24:12, 딤후3:1). 그러나 진리에 속한 자는 더욱 사랑합니다 (요일3:10, 18-19). 이 아가페적인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잠언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망없이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9)

   9절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고 했습니다. '대접하기를'에 해당하는 필록세노이(φιλοξενοι)는 사랑을 의미하는 필로스(φιλοs)와 나그네를 의미하는 크세노스(ξενοs)의 합성어로서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당시에 나그네는 주로 복음 전도자들이나 핍박 받아 쫓겨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을 대접한다는 것은 음식뿐 아니라 잠자리를 제공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불이익이나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핍박 받아 쫓겨 다니는 그리스도인인 경우에는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으므로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고 한 것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위해 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한 것이므로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부지중에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했습니다(13:2).

 

    은사대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10-11)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봉사’에 해당하는 원형 ‘디아코네오’(διακονεω)는 ‘시중들다’ ‘섬기다’ ‘관리하다’ 등의 뜻입니다. 봉사는 다른 사람을 희생적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은사’에 해당하는 ‘카리스마’(χαρισμα) 선물로 준 능력을 말합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라고 거저 주신 능력으로서 다양합니다 (12:6, 고전12:4). ‘은혜’에 해당하는 ‘카리스’(χαρις)는 대가없이 베푼 호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호의를 받은 청지기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가정 관리인을 말합니다. 주인의 가정의 재산과 일 전체를 맡아 관리하는 관리인(집사)입니다. 이 관리인은 주인을 위해 일해야 하며 종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도와야 합니다.

 

  11=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표본 삼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한다는 것은 선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아낌없이 주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한다는 의미요, 자기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겸손 하게 하라는 의미죠. 그것은 범사에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죠.

 

   )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의 의미 (12-19)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라 했습니다.

 

12절下에 '불 시험'은‘불타오르는 재난(화재)’같이 ‘괴로운 시련’을 의미합니다 (fiery trial-KJV). ‘이상히 여긴다’라는 의미는 손님으로 여기다’ ‘낯설게 여기다’ ‘생소하게 여기다’ ‘이상하게 여기다’ 등의 의미입니다. 정신이 마비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이나 핍박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시련을 허락하신 것은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29:11).

 

? 성도의 고난이복이 될까요? 여기 5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1)연단을 위해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2).

   12절上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놀랄만한 환난이나 괴로운 시련은 연단시킵니다. 고난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고 강해지게 합니다. 야고보서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13절上).

   13절上에 그리스도께서 겪은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고난이 올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을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1:24에도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19:28에 “예수께서 이르시 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낼 때에 기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13절下).

   13절下에 ‘기뻐하게 하려’에 해당하는 원형 ‘아갈리아오’(αγαλλιαω)는 ‘기뻐 날뛰다’ ‘미칠 듯이 기뻐하다’는 의미입니다.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고난이 올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받을 영광으로 인해 상상을 뛰어 넘을만큼 엄청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4)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14).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동행해 주십니다. 스데반이 복음 전하다가 순교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했고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했습니다 (7:55).

 

5) 핍박자들이 심판을 받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17-19).

    베드로는 고난의 종류를 죄로 인한 고난과 애매히 받는 고난과 선을 인한 고난이 있다고 했습니다 (2:19-20).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는 고난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선을 행하므로 인한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심판이 시작될 때, 그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작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죄인들이 받을 심판을 얼마나 크겠는가 라고 했습니다.  (17) 차마 견디기 너무나 힘들고 참혹한 심판의 고통이 임할 것입니다.

 

 결론)

4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사회와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경험하게 되는 고난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당연히 고난을 당합니다. 죄로 인한 고난과 애매하게 받는 고난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기 때문에 받는 고난도 있고 사명을 감당하기 때문에 오는 고난도 있습니다. 핍박뿐 아니라 모욕과 손해를 보아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심판을 견디면 크나큰 상급을 받고 영광을 누릴 것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이 됩니다.

                                              

 060623 안익선 목사/ 참조:차용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