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전후서

베드로전서 1장 강해 (하나님과 예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

호걸영웅 2023. 5. 18. 22:31
      베드로전서 1장 강해 (하나님과 예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라)
서론)
벧전 11~12절은 서론부요, 13절부터는 본론부의 시작입니다.
본론부의 주제는 높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입니다.(1:13~25)
 
본론)
1. 베드로가 편지를 보낸 지역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라고 했습니다.  현재는 투르키예-라고 부르는 나라의 상당 부분입니다.

 
소아시아(혹은 투르키예)= 터어키의 중부지역을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아시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넓은 지역)라고 하고, 그 윗부분, 즉 흑해에 임한 지역을 서쪽은 비두니아, 동쪽은 본도(해변을 따라 길쭉함)라고 불렀습니다. 아랫 부분에 조그마한 루기아, 밤빌리아 지방이 있고, 동쪽에 제법 넓은 길리기아 지방이 있습니다.
 
2. 1절의‘흩어진 나그네’란 표현=교회의 출발은 개종한 유대인들로 말미암았지만 AD60 년 경에는 이미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어져 버렸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유대인을 의미하는 단어조차 영적인 유대인, 즉 그리스도 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변해 버렸습니다.
 
3. 2절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누가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기록했습니다.
아버지의 미리 아심과 택하심(계획, 예정, 20, 2:23),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결단코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수많은 섭리들의 합력하심을 통하여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말씀입니다.
 
4. 또 베드로 사도는 성도를 가리켜 ‘나그네’라고도 하고 ‘택하심을 입은 자’라고도 합니다. 의미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 편에서 보면 나그네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택함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거의가 개종한 사람들이다 보니, 예수를 믿고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버림받은 채 소외된 삶을 사는 그들이 이 땅에서는 나그네이지 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별된 존재라고 격려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소수인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사람처럼 살지 말아야 합니다.
 
5. 무엇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가(3, 5)?에 대해 교훈하는 부분입니다.
1)하나님의 많으신 긍휼, 2)예수님의 부활하심(3), 3)너희의 믿음, 4)하나님의 보호하시는(=성령의) 능력(5):이 연합되어야 구원이 이루어 집니다.
 
6. 거듭난 자는 결과적으로 무엇을 얻게 될까요(3, 5, 9)? 3가지!
1)산 소망을 가지게 됨(3): 산 소망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는 것(=영원한 기업), 하늘에 간직하신 것(4, = 결코 빼앗기지 아니함),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5),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9),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것(5), 등이죠.
 
7.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은 특별한 구원인가? 구원에도 보통 구원이 있고, 특별 구원이 있는가?
우리가 얻은 구원이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온전하게 성취될 것을 가리킵니다. 어느 가정에서 양자를 들인 경우에 법적으로(혹은 서류상으로)는 아들이 되었으나 실제 로 아들의 지위를 누리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8.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가 아니라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5) 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는 구원을 얻었지만 사람에게는 핍박을 받는 상황이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뜻입니다.
 
9. 하나님의 보호의 의미=이는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한번 믿은 자는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10.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면 기쁨이 넘치나 근심할 일도 있기 마련이다(6)라고 했습니다. 잠간 근심함과 크게 기뻐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구원의 길에는 없던 시험거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잘 이겨내면 엄청난 복이 기다리는 시험입니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시작될 무렵에 이런 시련을 예상하고 이 글을 쓴 것 으로 추정합니다.
 
11. 7=그럼 여러 가지 시험을 당했는데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시험(=믿음의 시련)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크고 놀라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때문이죠(7).
 
12.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7)? 불로 연단하는데 왜 없어지나?
불로 연단하여 잘 제련된 금도 결국은 닳거나 녹아 형태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18) 구원을 이룬 믿음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영원 불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3. (6, 8-9)=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를 말합니다.
영혼의 구원: 이것이 모든 기쁨의 원천이어야 합니다. 물질의 풍부함이나 욕심은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입니다.
 
14. (11)=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핀 것은 무엇인가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얻으실 영광이 어느 때인지 너희에게 임()한 은혜(11): 선지자들이 자신이 예언한 말씀을 스스로 상고했다는 것은 자신들도 내용을 다 모른 채 말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5. ‘선지자들도 부지런히 연구하던 것(10), 너희를 위한 것(계시로 알게 된), 성령을 힘입어 너희에게 전하여진 것,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12), 곧 복음은 성도들의 믿음과 무슨 관계일까요?
 
결국 복음은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란 겁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천사들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의 내용의 놀라움입니다. 복음은 천사들도 상상을 못했기에 자세히 살펴보아야 이해할 만한 귀중하고 신비한 하나님의 비밀이라 했습니다( 10:24).
 
16. 13절은 그리스도인은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사는가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가져오실 은혜(13)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내세주의자입니다. 현실에서 한발짝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매몰되 지 않고 현실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주의자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매몰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장기판에서 제사자 훈수를 더 잘두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결국은 건전한 내세주의자가 현실주의자보다 더욱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17. 세상의 온갖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려면 나름대로 분명한 가치관(믿음, 신념, 소신, )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의 표현(14-17)을 빌려서 한 가지를 추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것,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것(17)입니다: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세상의 유혹에 끌려 들어갈 수 없죠. 내가 누구냐?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 아니냐? 라는 정체성, 아이덴티티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내가 물맷돌인지 금광석인지, 혹은 내가 자갈돌인지 다이야몬드인 지를 구분하듯.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되는 출발점이죠.
 
18. (18-19)=그리스도의 피가 은이나 금보다 더 보배롭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3, 25): 일반적으로 본다면 은이나 금은 육신에 속한 것이요 그리스도의 피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18절은‘영원성’을 강조합니다. 고로 교회는 한 영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대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9. (20)=창세 전에 예수가 알려졌는데 나타나기는 말세에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알려졌다= 즉 하나님은 미리 아셨다는 말이죠(2).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나타나실 것은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결정하셨기에 아셨던 일이 됩니다. 구속사의 전 과정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일이 결코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신 일입니다.
 
20. 20-21= 이 복음과 관련된 모든 일을 주관하신 분은 곧 하나님시다: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아시고, 이 세대에 나타나게 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결국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신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성도가 거룩해야 할 이유도, 형제를 사랑해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21.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사역은 형제 사랑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나와 우리의 모든 형제를 하나님께서 이토록 사랑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말이 됩니다.
 
22. (23)=그리스도인의 거듭남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의 구체적인 내용이 곧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지자, 전도자들이 전해준 복음이고(10-12) 그 복음의 핵심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흘림입니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기 때문이죠. 고로 불신자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열심히 들려주어서 그들이 예수 보혈을 알고 믿어 거듭나도록 우리의 삶과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결론)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 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 열심히 전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할렐루야!
    050923 안익선 목사/ 참조: http://www.skhong.org/peter/1pe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