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1장 강해(침례 요한의 탄생)

호걸영웅 2023. 10. 26. 03:59

누가복음 1장 강해(침례 요한의 탄생)

본문 읽기 :  1:5~80
서론)지난 주엔 누가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 데오빌로 각하에게 소상히 알림이 옳은지라 라고 하며 누가 복음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누가의 시대에 이루어진 일’을 말하는데요. 여기서 ‘이루어졌다’는 말은 ‘성취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성취된 사실’들에 대해서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성취는 결국 하나님에 의한 것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4 44절에서 48= 예수님께서 모든 십자가의 사역을 끝내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 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24:44-48)고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실 모든 일을 구약성경에 기록하셨고 또 그것들이 이루어 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누가는 그 제자들의 그 증언을 바탕으로 누가복음을 기록했던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이루신 역사를 하나의 동떨어진 역사로 보지 않고 하나님 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계획의 한 덩어리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 음은 구약성경이 끝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은 말라기 4 5-6절입니다.

“보라 너희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4:5-6). 이것이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 메시야가 이 세상의 왕으로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누가복음 1장에서도 그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예수)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17)하십니다.

천사가 얘기해주었던 이 침례 요한이 바로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엘리야’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내용은, 침례 요한이 태어날 것이 예고되고 성취된 사건의 기록입니다.

말라기에 따르면 “공의의 해가 떠오르기 전”(예수의 공적 활동 이전에)의 상황입니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고자 한 작은 제사장 가정을

사용하시게 됩니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복음서 말씀에는 헤롯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여기서의 헤롯은 ‘헤롯 대왕’이라고 불리는 왕으로서, 예수님의 탄생 조금 이후에 죽은 왕입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헤롯들은 그의 아들들입니다. 헤롯은 이두메 사람, 곧 에서의 후손이었습 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는데, 헤롯은 유대 지방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그 위의 갈릴리, 시리아와 베뢰아 등 유대인들이 사는 모든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헤롯은 왕으로서 농업을 장려하고 경제적 기반을 잘 닦아 놓는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자들로 여겨졌던 아내와 장모, 아들들까지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잔인한 왕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서, 그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의 탄생 소식을 듣고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이를 모두 죽였던 왕이 바로 이 헤롯 대왕입니다.

헤롯 왕의 시기는 한국의 일제 강점기처럼 어둡고 힘든 시기였습니다. 단지 헤롯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바벨론 침공 시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포로생활을 마치고 그들이 다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말씀을 주시고 나서 약40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를 거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왕은 에돔 출신(에서의 후손)으로, 로마의 힘을 의지해 다스리던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습니다.

헤롯은 성전을 웅장하게 건축하기도 했지만,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며,  그는 성전에 태양신을 숭배하는 독수리 상을 만들어 놓았고, 그 성전 안에서 로마황제를 위한 희생 제사를 드리게도 했습니다. 그 성전의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착취하던 악한 사람들이었으니……이렇듯 당시 상황은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그만큼 깊었다는 것은 이제 해가 떠오를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류 구원의 역사가 절정을 맞이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아주 평범한 한 제사장 부부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5). 당시에 제사장은 약 2만 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제사장을 24개의 반열로 나누고 각 반열이 각각 차례를 돌아가며 성전에서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각 반열이 일 년에 두 번씩 일주일을 섬기게 했습니다.

고로 사가랴는 그가 속한 여덟 번째 아비야 반열을 따라 봉사를 하러 성전으로 갔던 것입니 다. 그는 800~900명가량 되는 자기 반열?의 제사장들 중 평범한 제사장의 한 사람이었습 니다. ‘사가랴’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30명 정도 등장하는데,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 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시대 때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았습니다. 영적, 사회적으로 암흑기였던 시기에 사가랴의 부모는 하나님께 당신의 약속을 기억해달라는 마음으로 이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의 집안 역시 제사장 가문으로서(아론의 자손) 그녀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맹세이시다, 분깃이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누가는 이 두 사람의 ‘영적인 상태’와 ‘육적인 상태’를 알려줍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6). 이것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제사장들에 대해서 형식적이고 종교적이며 외식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지만, 이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참된 의인들이었습니다.

7절입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7). =엘리사벳이 늙고 불임이었기에 이들에게는 장래에도 자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나이가 많았다는 것은 엘리사벳의 나이가 60세 이상이었던 것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자식이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었습니다. 반대로 자식이 없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거나 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결과로 자식을 안 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문헌에 따르면 랍비들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을 당하는 유형으로 첫째가 ‘유대인으로서 아내가 없는 사람’, 또는 ‘아내는 있는데 자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자식이 없으면 이혼 사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60세가 넘도록 자식이 없는 것은 사람들에게 흉이 될 수 있는 형편이었습 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으로서 일 년에 두 번 성전에 가서 섬겼고 습니다. 9절에서 사가랴가 제비에 뽑혀서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하게 됩니다. 당시 성전 주변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분향을 하는 일은 제비에 뽑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렇게 한번 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육십 평생을 제사장으로 살아도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분향하지 못했던 사가랴가 지금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일생에서 딱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설레었을까요?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면 분향하는 단이 있는데 그 위에 숯불을 놓고 향을 뿌려야 했습니다. 그 향의 연기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의 상징이었습니다. 분향하는 시간에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를 하고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의미로 분향제를 드렸던 것입니다. 사가랴는 그러한 큰 특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 아마도 꽤 긴장했을 것이고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 볼 성소 안을 자세하게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그때가 사가랴의 일생의 정점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 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13-16). 사가랴는 아마 이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지금까지의 모든 경건한 삶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17).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때에 천사를 보내신 후로 500년 동안 인간에게 천사를 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분향제를 드리고 있는 순간 그 오랜 침묵을 깨시고 천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가랴 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도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가랴는 놀라고 무서워하였습니다. 천사를 보자마자 ‘아 이제 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사가랴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천사가 너의 간구함이 들렸다고 말했는데 사가랴는 어떤 간구를 했을까요? 자녀를 달라는 기도였을까요? 아마 그렇겠지요?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가 이것을 어떻게 믿느냐고 묻습니다. 자신들 부부가 나이가 많으니 징표를 주십사 여쭌 것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19)고 합니다. 천사는 그가 하나님 앞에 섬기는 가브리엘 이라고 알려줍니다.  가브리엘은 구약에서 다니엘에게 나타나 모든 인류의 역사를 펼쳐 보여주었던 계시의 천사였습니다.  사가랴가 그에게 표적을 구하자 천사는 사가랴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의 표적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표적이자 약간의 심판?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었는데 말을 못하게 되니 어찌되겠습니까? 또 이렇게 놀라운 메시지를 직접 받은 사가랴가 정작 그 사실을 말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분향은 그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사가랴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후에 성전 밖으로 나온 사가랴를 본 백성들은 그가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생각합니다. 말을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듣지도 못하게 되어 사람들이 얘기할 때 몸짓으로 말하고 사람들도 몸짓으로 말해야 했습니다. 사가랴는 그 놀라운 일을 직접 보고도 말하지 못하게 된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후 그의 아내 엘리사벳도 천사의 말대로 아기를 잉태하고 사가랴는 그 예언이 성취된 이후에 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었습니다. 그 부분인 67~79절을 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읽음)

 

결론)

 여기까지가 사가랴라는 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신 일들입니다. 누가는 서문에서 데오빌로 각하가 알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해주려고 이 글을 썼다 했습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본 예수님의 삶은, 유대라는 조그만 땅에서 한 청년이 일어나 무언가 큰 일을 할 것처럼 하다가 죽어버린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을 통해서 계속해 서 사도들이 일어나고 복음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데오빌로도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때의 데오빌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으나 좀 더 확실한 증거들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죄인들 을 구원하시려고 어린 양 된 메시야를 보내신 하나님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구약에 약속하신 모든 말씀을 성취하신 존귀하시고 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100323 안익선 목사 /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