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8~30)

호걸영웅 2024. 3. 30. 05:41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28~30)

 

서론)

모든 일에는 끝맺음 ’이 중요합니다. 다른 말로는 유종의 미라고 합니다.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만날 때 반갑고 즐거움만큼 헤어짐도 아름다워야 진짜 멋진 삶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타임지 창간자의 부인이신 클레어 부츠 루스((Clare Boothe Luce) 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기억된다.”어쩌면 이것이 묘비에 기록될 한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으며 ,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서, 마틴 루터 킹은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로 기억되는 것이 바로 그 예가 되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애국충절의 지도자로서 이순신 장군을, 백성을 사랑한 왕으로서는 한글을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킨 세종대왕을 손 꼽기도 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강력한 미국 건설을 위해 힘쓴 공로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도중에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을 보면 자신의 성공적인 성과는 묻힌 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임기 도중 사임한 미국 최초의 대통령’으로만 기억될까 괴로워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멋진 한 문장으로 인생을 끝맺음 하고 싶어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우리 인생은 미완성으로 흐지부지하다 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완벽한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완벽한 삶을 사셨고 완벽한 죽음의 끝맺음을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로마의 장교 백부장은 십자가 밑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15:3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일곱마디의 말씀들, 즉 가상칠언(架上七言)(seven words on the cross of Jesus)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선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중의 마지막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 다 이루었다에 담긴 깊은 의미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본론)

) 죄의 값을 다 지불하였다는 의미

1. 이 말씀은 인간 역사 상 가장 놀라운 승리의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에 인생에 대하여 스스로 이러한 놀라운 선언을 말할 수 있을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한 롬 6:23절 말씀처럼 그 죄값을 치루고자 십자가를 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이 말의 중요성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찍이 말해왔던 다른 모든 말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 말은 전혀 측량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나 높아서 내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은 너무나 깊어서 내가 도저히 그 깊이를 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다 이루었다”로 번역된 그리스(헬라)어 ‘tetelestai’는 상업용어로 쓰일 때는 ‘다

지불했다’는 뜻이고, 미술용어로 쓰일 때는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예언의 말씀이 다 성취되었는 의미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말씀 ‘tetelestai, 다 이루었다’는 먼저는 구약에 예언된 말씀들이 예수님 안에서 다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 1:2)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완성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그는 베들레헴에 태어나시면서 미가서 5 2절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많은 유대백성과 이방인들에 은혜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  업신 여김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갖 고난을 받으시므로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심으로써 슥99절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요나서에서 인용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하셨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이 결국 다 이루어졌습니다. 또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에게 성령이 불꽃같이 임하고 제자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귀신을 좇고 병을 고치는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요엘서의 성취입니다. 이 모두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지 않으시면 완성될 수 없는 말씀들이었습니다.

 

)구원의 계획이 다 이루어졌다는 의미

 또 하나는 세상을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성소(Holy place)는 백성의 죄를 담당하는 제사장만이 들어 가는 곳입니 다. 즉 제사장이 없이는 백성의 죄를 용서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시비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과 대면하여 우리의 죄를 직접 회개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아직도 사제를 통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는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김미열 목사(원주 중부교회 시무)란 분은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노르웨이에 입센( Henrik Johan Ibsen)이라고 하는 극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시민극 현대극의 아버지라 할 정도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많이 만들고 공연했던 인물입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환자와 상담하기 위해 피터 징크에란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 병원은 정신질환자 들을 치료하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수감되어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을 상담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담하는 중에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환자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거나 생각이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전혀 이상함이 없어보였습니다. 분별력도 있고, 논리 있게 이야기를 잘하는 것이었습니 다.

그들 중 상당수의 환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저에게 꿈이 있습니다. 제 소망은 이런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등 이야기를 너무 논리적으로 잘하였습니다. 또 다른 환자를 상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분별력 있게 자기 이야기를 잘 하였습니다. 미래의 꿈과 이야기도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상담 후에 입센은 담당 의사를 만나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선생님. 제가 생각하기에 많은 환자들을 퇴원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오히려 인권 침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대화해 보니까, 그들은 논리적으로 분별력 있게 자기 이야기를 너무 잘 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비전과 소망과 꿈도 이야기하는 데 모두 정상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을 여기에 가둬 두셨습니까?”라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미친 거예요.”라고 합니다.
입센은 의아해 하며 묻습니다. “그래서 미쳤다니요? 무슨 말입니까?

의사가 답해 줍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밖에 모른다는 거죠. 모두 이야기를 잘합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 분별력 있게 이야기를 잘하는데, 특징은 모두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겁니다. 나 밖에 모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모르고, 내 가족도 모릅니다. 오직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 생각만 합니다. 자기 꿈과 자기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왜 함께하지 못하고 왜 함께 살기 어렵냐 하면, 자기만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질환자들의 특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입센은 의사의 이야기를 듣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에 입센은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구나. 여기만 정신병원이 아니라 세상이 온통 정신병원이구나.”라고 했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목회자들도, 심지어 심리학자들도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중심입니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족도, 형제도, 이웃도, 사회 생활도 자기중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자기중심 입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자신의 쾌락과 욕망과 이기적인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 중심으로 이탈한 상태를 ‘죄’(하마르티야=과녁을 벗어났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 중심에서 극단적 자기주의로 세계관과 인생관을 형성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이 중심이 되도록 만드셨습 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이웃을 보며, 함께 하는 가족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중심으로 옮겨 죄를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았던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까? 하나님 중심에서 자기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는 사단의 유혹에 말려 들어가 버렸습니다.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된 그때 범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죄를 범하여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만 존재하는 세상은 죄악 세상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아가는 것이 바른 세상입니다. 서비스를 받기도 하고 서비스를 주기도 해야 세상은 정성적으로 돌아 간다는 말씀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나만의 중심 세계를 하나님 중심의 세상과 연결해 준 참으로 놀라운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위의 예수께선 이루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다 확증되었다는 의미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에게 알리는 확실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요. 지금도 많은 이들이 동일한 질문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죄사함받을 수 있는가? 성경은 이렇게 답해 주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다!라고요.

 

( 2:8~9)=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착한 일 한다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예요. 그냥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예수님을 믿어 모시기만 하면 됩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성경대로 이 땅에 오셨고 사셨고 성경대로 나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사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됩니다. ( 4:25)도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했어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결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고로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고 운명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셔야 할 일은 2000여년 전에 이미 다 끝났습니다.

 

그 나머지 책임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인류의 소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인류 모두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바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찬양과 감사로 부활 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복된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31924 안익선 목사/ 참조:백운주 목사 ,  주간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