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아가서 2장 강해(친밀해지는 사랑 )

호걸영웅 2024. 5. 4. 23:12

아가서 2장 강해(친밀해지는 사랑 )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노래 모음집으로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 1:1-5:1 이 ‘신랑과 신부의 사랑의 시작’을 노래하고 있다면 2)5:2-8:14 은 ‘신랑과 신부의 깊어진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오늘 본문은 1장에 이어 더욱 친밀해진 신랑과 신부의 사랑 노래 부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절은 신부의 노래입니다.

본론)
(1
)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신부는 신랑에게 자신을 가리켜 (나는)‘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 합니다. ‘사론’은 욥바에서 갈멜산 남부지역까지 이르는 해안 광야지인데, 이 지역에는 들꽃들이 많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수선화는 그 중의 하나입니다. 백합화 또한 골짜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으로 신부는 자신을 그 흔한 꽃들에 비유하며 평범한 사람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에 대한

(2
)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2
= 신랑의 노래입니다.
신부는 스스로를 ‘백합화’ 라고 칭하며 겸비한 자세를 취했지만 오히려 신랑은 그런 신부를 향해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이라며 가시나무와 대조하여 백합화의 격을 더 높여주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 배우자 상호 간에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겸손입니다. 비록 상대보다 내가 더 잘났고 더 능력을 지녔을 지라도 내 배우자만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단 한 사람임을 기억한다면 상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배우자는 오히려 나를 높게 평가해 주고 고귀하게 여겨주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죄인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주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겸비한 모습을 지니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높이 평가해 주십니다.
자신의 겸손에 대해 신랑으로부터 품격 있는 칭찬을 받자 신부는 신랑을 자랑하는 노래를 6절까지 이어갑니다. 먼저 3절 상반절입니다.

(3a)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백합화와 같이 평범한 자신을 품격있게 대해주는 신랑을 향한 신부의 사랑 고백은 점점 발전되어 갑니다. 신부는 신랑을 가리켜 ‘사과나무’ 라고 합니다. 그것도 ‘수풀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사과나무’ 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 사과나무는 과실나무의 왕으로 여겨졌습니다. 신랑이 자신을 가시나무들과 대조하며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자 신부 또한 신랑을 왕처럼 존귀한 자로 존중해 줍니다.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며 품격을 높여주셨음도 동일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b)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3
절 하반절입니다. 신부는 자신의 신랑을 사과나무에 비유하며 그 그늘에 앉아 심히 기뻐하였고 달콤한 열매를 맛보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신랑의 그늘, 곧 보호 아래 평안과 안식의 기쁨을 누렸다는 의미입니다. 배우자 상호 간에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로의 그늘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뜨거운 볕을 피하여 쉴 수 있는 그늘, 치열한 삶으로부터 보호막이 되어 안식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주는 것, 함께 매진해 가야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영원한 그늘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처요 보호막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63 7="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라고 했습니다.

(4
)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4
=자신을 잔칫집으로 이끌어 간 신랑의 사랑에 대해 신부는 ‘깃발’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깃발 ’은 특히 군대의 깃발을 일컫는 것으로서 군인의 전의를 북돋우며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는 상징물입니다. 신부를 향한 신랑의 사랑은 이처럼 신부의 자랑거리가 되어 삶의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이름을 삶의 깃발로 세우고 자랑하며 살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20 5절 말씀입니다.
"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죠.

5
절부터 6절까지는 신랑의 사랑이 어떠하였는지를 노래하는 내용으로, 6절에 의하면 ‘안아주었다’ 곧 ‘포옹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 중 하나가‘포옹, 혹은 포용'입니다. 상대의 그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안아주며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허물과 죄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감싸 안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한편으로 7절은 예루살렘 처녀들에게 그 사랑을 깨우지를 말기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그런 행복이 오래 가길 원하는 것이죠.

(8~9)
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8
절부터 9절까지는 다시 신부가 신랑에 관하여 하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산’과 ‘작은 산’은 신랑과 신부,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신랑이 마치 노루같이, 어린 사슴같이 그 난관들을 뛰어넘어 자신을 향해 달려와 창살 틈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고 신부는 노래합니다.

사랑은 ‘뛰어넘음’ 입니다. 모든 어려움을 뛰어 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신랑과 신부가 될 수 있었음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며 사랑의 힘으로 그 틈을 뛰어 넘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우리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 차이를 뛰어넘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셨습니다.

(10~1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이제 10절부터 14절까지는 신랑이 신부에게 하는 노래입니다. 여기서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신랑의 구애가 있습니다. 바로 ‘함께 가자’ 입니다. ‘사랑’은 ‘함께 감’, 곧 ‘동행’입니다. 본문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으니 푸근한 봄의 땅으로 ‘함께 가자’고 합니다.

사랑은 그대가 있음에 내가 비로소 존재함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때에 그대의 손을 잡고 동행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도 우리 안에 내주하여 주심으로 우리와 함께 언제 어디서나 동행해 주시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의 증거입니다.

때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그 성령님의 손을 잡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우리와 동거해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5
절은 다시 신랑에게 하는 신부의 말입니다.
신부는 신랑과의 사이를 허물려 하는 장애물을 ‘여우’ 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우’는 포도원에 침입하여 나무를 갉아 먹는 등 포도농사를 망치는 주범이었습니다. ‘포도원과 여우’의 비유를 통해 신부가 신랑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허물려는 악의 세력들이 또한 존재합니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그 존재들을 다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깨어 믿음으로 대적하는 것’ 입니다. 베드로전서 5 8절에서 9절 말씀입니다.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했어요.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16
절과 17절에는 신부가 신랑에 관하여 다른 이에게 하는 말이며 마지막 절인 18절은 신부가 신랑에게 하는 말입니다.

16절에서 17절입니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에게 속하여 있고 자신 또한 신랑에게 속하여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속함’ 입니다. 하지만 ‘구속’이라기 보다는 ‘연합, Union’입니다. 또한 ‘사랑’은 ‘상대의 아름다움을 계속 발견해 나가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그 대상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본뭉에서 말하는 베데르 산은 바위들이 매우 울퉁 불퉁한 험한 산이나 언덕을 말합니다. 위치는 감란산에 이르기 전의 가파르고 제법 바위들이 험하게 분포된 산으로서 베다니와 그 감람산의 사이 즈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곳엔 많은 노루와 사슴들이 서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계속 알아가려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결론)

오늘 아가서 2장은 사랑의 다양한 속성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때가 곧 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시며 ‘자기애’ 라는 이기적인 자세를 벗어버리고, ‘오늘 더’ 내 가족을, 교우를, 이웃을,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써, 주님의 사랑에 진정으로 연합되시기를 바랍니다.

 

040424 안익선 목사/ 참조:이성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