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3장 강해(신랑 찾기 & 혼인날의 행렬)
(찬송가 442,446)
서론)
아가서 3장의 대지 구분은 1)신랑을 찾아서(1-5절), 2)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6-11절)입니다. 여기서 신앙 신부는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되 신부가 신랑을 연모함이 더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본론)
가)신랑을 찾아 나서다(1-5절)
아가서는 한편의 오페라(가극)와 같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상당히 직설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문자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아가서를 문자적으로 솔로몬왕의 술람미 여인에 대한 사랑, 즉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책으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면 구태여 성경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도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 최대의 절기는 그들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인데, 그 유월절이 이 아가서를 낭독하였는데, 만약 이 책이 연애시라고만 한다면 그렇게 중요한 절기에 그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가서를 상징적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상징적 해석은 ‘솔로몬왕=하나님’, ‘술람미 여인=하나님의 백성’ 이나 ‘솔로몬왕=예수 그리스도’, ‘술람미 여인=교회’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타당한 해석이라고 할지라도, 솔로몬왕이 실제 자기 이름까지 거명(1:1)해 가면서 술람미 여인과 사랑을 노래한 사실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술람미의 사랑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아울러 그 사랑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예표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부부지간에 있는 사랑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술람미 여인의 신랑감(솔로몬왕)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 즉 연애와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 알게 해 줍니다. 전반부인 1-5절은 신랑을 그리워하는 여인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지금 술람미 여인은 잠시 외로워 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이 왕을 자주 만나지 못한 경우(공무 탓?)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꿈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밤’이라고 된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는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시간으로 나뉜 며칠 밤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술람미 여인은 밤에 종종 깨거나 , 또는 여러 날 동안 꿈에서라도 임을 만나기를 소망했습니다.
술람미 여인도 사랑하는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서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밤에 침상에서’라는 말은 술람미 여인이 꿈속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꿈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솔로몬을 찾아 나섰습니다.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술람미 여인은 혹시 큰 길에서 솔로몬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성 안을 돌아다닙니다. ‘거리’와 ‘큰 길(광장)’이 모두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인은 성 안의 여러 거리를 돌아다닌 것입니다. 또 큰길(광장)은 시장이 열리는 곳이고, 재판이 벌어지는 곳이었습니다. 고로 거리와 광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거기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솔로몬왕을 보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온 성안을 돌아다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여인은 순찰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순찰하는 사람들은 그 성의 파수꾼들입니다. 특히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찾는 사람이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 마음’은 ‘내 영혼’, ‘내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다해서 사랑하는 사람이고, 자기 생명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태도도 이와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영원히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마침내 술람미 여인은 성을 순찰하는 사람들을 지나친 후, 신랑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4-5)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술람미 여인이 성을 순찰하는 사람들과 헤어진 후, 다행히도 신랑감을 만납니다.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자, 그의 손이나 팔을 꼭 붙잡고 자기가 태어난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서 서로가 마음껏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했고, 또 누군가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음을 표현하게 됩니다,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면 서로가 집중해서 깊이 아는 시간이 제법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커플들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깊이 잘 모른 채 결혼을 하곤 합니다(중매 경우 더 그러함). 정말 나를 사랑하는지, 정말 좋은 배우자감인지 알기에 힘쓰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닙니다.
나)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6-11절)
오늘 본문의 후반부인 6-11절은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에 대해서 묘사합니다.
(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마침내 여인은 자신의 처소에서 왕궁으로 가게 되는데, 몸에 뿌린 향품으로 인해서 여러 가지 향내를 내며 갑니다. 결혼식 당일에 신부화장을 곱게 한 모습이 연상됩니다.
성경도 주님의 신부된 성도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합니다. 어떤 향기를 발할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가 향기를 발하지 못하면, 악취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은 신부가 오는 모습을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감탄문으로 표현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6절의 마지막에 있지만, 히브리어성경에는 처음에 나옵니다. 지금 이 말을 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신랑인 솔로몬왕과 신부인 술람미 여인이 가마를 탄 모습을 굉장히 부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7-8)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솔로몬왕은 자기와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무장한 군인을 60명을 보냈습니다. 특히 적들의 기습에 대비해서 허리에 칼까지 차게 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일반인들은 할 수 없지만, 솔로몬왕이 이렇게 한 것은 그만큼 상대를 많이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자기 배우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으면, 한 인생으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여성(아내)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자신이 존중받는 것입니다. 그 느낌이 없으면 삶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남성(남편)에게 아주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배려(인정)를 받는 것입니다.
이어서 9~11절은 솔로몬왕이 타는 가마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9-11) 솔로몬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가마를 만드는 잣나무(레바논의 백향목)는 왕궁과 성전을 만드는 최고급 나무이고, 거기에다 은과 금으로 덧씌워져 있습니다. 또한 자색으로 카페트, 즉 깔개를 깔았습니다. 자색은 바로 왕의 고귀함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그의 어머니가 씌워준 왕관이 있습니다. 당시의 관습으로, 신랑은 머리에 아주 좋은 관을 쓰고 혼인예식을 올렸습니다.
지금 솔로몬왕의 결혼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과의 혼인예식을 예표합니다. 그 때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최고의 존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솔로몬왕과 술람미 여인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하여 남편과 아내가 된다는 것은 곧 거기에 걸맞도록 조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전의 격차(신분, 나이, 경제, 학력, 문화 등등)들을 벗어 던지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지어져 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사랑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성숙해지고 그리스도를 존중함으로써 아름다운 신부로 살아가는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041124 안익선 목사 / 참조: 정한조
끝 찬송: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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