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누가복음 24장 강해(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

호걸영웅 2024. 5. 4. 23:29

누가복음 24장 강해(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

 

서론)

누가복음 24장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제자들의 만남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24장은 성도들이 이르러야 할 마지막 단계 부활을 기록했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떻게 제자들로 예수님을 알아보도록 하시고 또 믿게 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

)부활을 믿도록 인도하심(1~12)

   예수님의 부활이 세상에 알려지는 상황은,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향품을 예비하고 예수님 의 무덤을 찾은 여성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무덤가에서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저희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3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20:19)고 하며 부활을 당연시하 는 언급을 하게 됩니다. 그 여성들은 즉시 열한 사도와 또 함께한 자들에게 달려가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소식을 알렸지만 제자들은 허탄한 소리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무덤에 달려가 보았더니 예수님을 가렸던 세마포만 보일 뿐, 부활의 주님을 만나진 못하게 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24:1-12).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여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 예수님의 고난과 죽임 당하시고 3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셨을 때는 강하게 거부한 적이(16:16-22) 있었기에 더 예수의 부활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13-35)

다음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향해 가는 두 사람(글로바 외 1)을 도우시는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25(11키로 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입니다.

 

제자들이 왜 엠마오로 돌아가려 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게 해 주는 말씀이 바로 21절 상반절입니다.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라고 했어요.
 
이 구절을 해석하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음에도, 세상 도시적 가치관을 가지고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고, 예수님께서 세상적인 힘을 가진 구세주가 되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실망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두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놀라운 가르침을 받으면서 비로소 삶의 목적과 가치를 발견했고 또 일생을 예수님을 섬기며 살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께서 불법자들의 손에 허망하게 죽임을 당해버렸고, 그 허망함 가운데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도중에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모세와 및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당신에 관한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가끔 학자들은 구약은 율법을 말하고 신약은 은혜를 말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완전한 해석은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함께 경험한 여호와 이레(22:14) 라던가, 그리고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통해 나타난 일들이 부활을 엿보게 합니다.

 

실례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과 엘리야, 그리고 엘리사도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고(왕하4;35), 엘리사 자신은 죽어 뼈만 남았지만 도적떼의 침입으로 장사하던 자의 시신을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넣었더니 그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일도 있습니다(왕하13:21~22)

 

21.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해가 바뀌매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에 온지라  

 

  22.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어 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고 했습니다.

). 고로 부활은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은 전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31절은 에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잠시 이별?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예수의 몸은 부활하신 신령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고 했습니다.

 

그러고 난 후, 두 제자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열한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부활하신 주를 뵈었음을 증거하게 됩니다.

 

)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과 부활 증거(36~49)

   그때에 놀랍게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나타나셔서 열한 사도와 또 함께한 자들을 대면하십니다(24:33-43). 이 자리에 오신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서셔서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선포하십니다(24:36).

 

평강(에이레네)은 모세의 글에서만 20회 이상 쓰일 정도로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소중한 축복의 언어로 표현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각색 병자들,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심으로 그들을 편안케 하셨습니다. 바다에 부는 거센 바람을 잔잔케 하심으로 삼킬 것 같이 넘실거리던 풍랑을 잔잔케 하심으로 편안케 하셨습니다. 스스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중풍병자의 육과 영을 고쳐 안심케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생업을 그만 두고 머리 둘 곳도 없으신 예수님을 따르면 서도 편안함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중산층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어부의 직업들을 버리기도 했고, 또 다른 제자 중에는 수입 이 보장된 세리 직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어도 그의 심령은 기쁘고 만족스럽고 평안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셔서 찾아오신 주님께서 ‘너희에게 평강(에이레네)이 있을지어다’를 선포하셨을 때, 그 말씀은 예수가 함께 하셨을 때의 바로 그 평안함이 되살아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은 허둥댑니다. 그만큼 부활은 육신 가운데 거하면서 인간이 붙잡기에는 쉽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못 박히고 찢기운 손과 발을 만져 보게 하심으로 제자들로 믿게 도우십니다. 그 손과 발은 3년 동안 그들과 동행하며 그들을 붙잡아주고 격려해 주신 손과 발이었습니다. 체온도, 부드러움도 동일했습니다. 또 먹을 것을 청하셔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영접하고 예수님의 분부하심을 다시 받들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뜻을 증거하며 살게 된 데는 예수님의 이런 끝까지 돌보시는 사랑을 알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경을 거듭 말씀하시는 면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드디어 믿기 시작한 제자들에게 또 다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말씀들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 마지막 초점은 제자들로 하여금 성경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믿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성경 말씀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24:35). 

성경 말씀은 모든 유대민족의 삶의 방향적 지침이며 삶의 이유이며 삶의 모든 판단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6:4-9). 그러나 그 성경을 예수님께로 적용하는데 제자들은 대부분 실패해 왔습니다.

 

이 점이 있어서, 사도 바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인생 전반부를 가말리엘 선생의 율법 수준에 매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또 바울이 아라비아로 가서 3년간을 지내면서(1:17) 그가 성경(구약)을 다시 읽고 배우며 더욱 예수의 신성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더욱 확신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3일에 다시 사신 일을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고 제자를 삼으라 하십니다. 41~49 절 부분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 삼을 대상은 ‘모든 족속 ’이었습니다.

 

  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1.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2.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3.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요엘서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예루살렘)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50~53)

50.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승천에 대한 내용은 사도행전에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베다니에 이르렀다 했습니다. 예루살렘 동쪽 약 4km 지점입니다.

(1)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의 동네로 나사로를 살리신 곳(요11:1).

(2) 지금도 나사로 동네라고 부른다(막11:1,눅19:29).
(3)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대접을 받으실 때에 어떤 여인이 귀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주님의 머리에 부었던 일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마26:6,막14:3)는 동네입니다.

 

결론)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여러 제자들과 500인 이상의 사람들에게 나타나시고 대화하시고 식사도 같이 하시고 동행하기도 하셨습니다. 나중엔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만나 사도가 되게 하셨으니, 부활은 의심할 수 없는 사건이며 승천도 그러합니다. 예수께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모든 성도들은 이 일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이세상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늘나라의 소망과 부활을 바라보며 늘 인내하고 전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041024 안익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