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7장 강해(서로를 극찬하는 부부)
서론)
아가서 7-8장은 사랑의 시련을 극복하고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가는 부부의 모습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7장에서는 에로스적 사랑에 많은 묘사가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1-9절은 남편이 아내에게 부르는 노래인데, 마치 벨리 댄스(배꼽 춤)를 춰 보이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묘사하는 남편의 시선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10~13절은 아내가 남편을 치하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본론)
가)아내의 신체에 대한 아름다움의 묘사들(1~9절)
1절=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장인)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아내의 발을 노래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서 춤을 추기 위해서 발을 내밀었는데, 그 허벅지가 보입니다. 튼실한 허벅지는 건강미의 상징입니다.
솔로몬(남편)은 술람미 여인(아내)을 ‘귀한 자의 딸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O prince's daughter! , 왕의 딸 혹은 공주’라고 부릅니다. 사실 술람미여인은 농촌의 처녀였기에 이 말은 그냥 애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배우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이라 부르느냐에 따라서 나의 신분도 그렇게 결정됩니다. 내가 아내를 ‘어이’라고 부르면, 나는 ‘어이의 남편-낯선 사람과 사는 존재’고, 내 남편을 ‘웬수’라고 생각하면 나는 ‘적과 동침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 칼로 찌를지 모를 관계가 됩니다.
과거에 한국에선 남편이 아내를 ‘마누라’라고 불렀습니다. 마누라는 ‘마노라’에서 왔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아내가 집안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어서…… 남편이 눈치보고 살 때는 마눌님[1]/마나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는 마눌제(帝)가 있죠. 이재난고의 저자이자 조선 후기 학자 ‘황윤석’은 마노라를 쓴 뒤 '이는 옛말의 마립간이다'라는 주석을 덧붙이고, 사도세자를 이르면서 '사도 마립간' 이라 쓴 뒤, 주석으로 마립간이 마노라를 뜻하는 표현임을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학자 황윤석은 '마노라'를 옛말의 '마립간'과 같은 뜻으로 보았어요.
마립간이 신라에서 유래된 순우리말 존칭인 마루한의 한자 발음 차이인 것을 고려하면, 마노라 존칭은 순우리말 극존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엔 이 호칭은 노비가 상전을 부르던 칭호이기도 하고, 임금이나 왕후에 대한 극존칭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누라님과 사는 사람은 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을 ‘영감(令監)’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정삼품과 종이품의 관리를 일컫던 말입니다. 그래서 영감님과 같이 사는 사람은 귀족의 부인이 되는 것이라 합니다.
이제 2-3절=이렇게 말합니다.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라고요.
아내의 배와 가슴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배꼽도 미인의 여부를 가늠하는 건강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둥글고 깊은 배꼽은 포도주가 담길 만큼 깊은 술잔의 모양을 말합니다. 그리고 허리가 백합화로 두르고 묶은 밀단 같다고 하는 것은 아름다움과 늘씬함의 묘사입니다. 이런 잘록한 허리는 요즘 젊은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죠.
아울러 가슴도 아름답다고 합니다. 7절에서는 가슴이 포도송이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기도 풍성해 보이고 또 생명을 키워내기에 충분한 가슴이라는 것입니다.
4-5절=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왕이나 귀족의 색갈)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남편의 칭찬은 발에서 시작하여 점점 상체 부분으로 이동하며 칭찬을 합니다. 여기선 아내의 목과 얼굴에 관한 찬양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목을 ‘상아 망대’에 비유하고 있는데, 4장에서는 ‘다윗의 망대’에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길고 튼실하며 어여쁘다는 것입니다.
요단 동편에 있는 과거 아모리 족속의 땅이며 목초지가 많았던 헤스본은 비옥한 땅과 투명하고 깊은 연못으로 유명했는데, 아내의 눈이 그처럼 맑고 깊다고 노래했습니다.
다메섹(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260km 떨어진 곳입니다. 또 아내의 코가 망대와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오똑하게 솟아 어여쁘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이 코와 눈이라고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 예쁘다고 합니다. 물론 술람미 여인이 가꾸어 놓고 보니, 상당한 미녀이긴 했겠지만, 사실 남편의 눈이 사랑에 씌어 더 그런 것이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께서도 교회를 그리 사랑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단점이 많은 신부라고 생각할 지라도 예수님 눈에는 다 예뻐 보입니다. 고로 예수 앞에 서는 일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의 매우 매력적인 부분은 머리카락입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검음을 넘어서 자줏빛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 머리카락에 솔로몬의 마음이 포로가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설마 머리카락에 마음이 사로잡힐리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머리카락은 흡입력이 강합니다. 헤어제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도 있고 미용실이 성업하며 돈을 잘 버는 이유 중엔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주는 성적 매력이 대단히 크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9절=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남편은 이제 아내의 키의 늘씬함과 아름다운 가슴, 향기로운 체취에 대해 노래합니다. 종려나무(대추야자)는 3~7m까지 자라는 나무입니다. 아내의 키를 이 나무에 비유하는 것은 아내의 키가 늘씬(7~8등신)하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콧김이 사과 냄새 같고, 입은 좋은 포도주와 같다고 하는 것은 아내와의 긴밀한 접촉에서도 큰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구취나 몸의 악취 등은 매우 감점 요인이 됩니다. 하물며 부부 공동 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조건이 아닐 순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아름다운 아내에 대해서 6절에서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나) 아내의 회답의 노래(10~13절)
10-13절=은 남편의 노래를 들은 아내가 감사로 노래를 이어 갑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아내는 남편에게 속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소속감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것에 자신을 일치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 배우자를 사랑하지만 집에는 안들어가요”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겠죠? 예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우리에게 속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겠는가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11-12절=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일반적으로 ‘남자는 몸이 먼저 가고 다음에 마음이 가고, 여자는 마음이 가고 몸이 간다’고 합니다. 아내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왕궁보다도 자기가 살던 시골에서 신혼을 얼마간 보내기를 원합니다. 거기에 가면 자신의 마음이 너무 편하고 행복해지기 때문에, 100% 이상 남편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의미입니다.
결론)
사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노래하는 것처럼 그렇게 미인이 아닐 것입니다. 시골 아가씨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죠. 그것이 그에게 열등감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의 모습이 주님께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그 이상이고 더욱 존귀하고 더욱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입니다. 그 보혈의 공로인 주님의 피가 우릴 더욱 거룩하고 아름답게 꾸며 주십니다.
술람미 여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기 원했던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우리도 우리의 최선과 우리의 사랑을 온 힘을 다해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도어야만 합니다.
051024 안익선 목사/참조:정한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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