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가 가진 믿음 (사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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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
서론)
구약 성경에 나오는 많은 선지자 가운데……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장 많은 예언을 기록한 선지자가 계십니다. 이분은 예수 나시기 전 700여년 전에 활동하신 선지자이십니다. 바로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습니까? 저의 사택에만도 200권의 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가진 책만 해도 1000권의 정도의 책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책은 보통은 수백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성경만이 믿을만한 책일까요?
성경은 사실 약속의 책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은 이런 저런 일을 하셨고 또 하시겠다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그 예언을 지켜 나가실 것들, 혹은 일들을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미리 하신 말씀들을 어김없이 잘 지키시면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정직하시고 살아 계신 분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잘 지키시는가 하고, 계속 수천년을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나 성실한 사람들을 통해 점검하고 조사하고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성경을 안 믿는 사람들도 소수는 있었습니다만, 그런데 오랫동안 고고학이나 성경의 복사본을 연구하는 사본학 등을 연구한 사람들은 처음엔 불신자였다가 나중엔 신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해 졌습니다. 영화 ‘벤허’를 소설로 쓴 저자 루 웰리스(Lew Wallace)도 처음엔 성경이 거짓이라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저자가 나중에 성경을 공격하려고 많이 연구해 본 결과 오히려 열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명작 영화 ‘벤허’가 만들어 진거예요.
제가 성경은 약속들의 책이라 했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수천 가지 약속을 수백여명의 선지자와 왕들과 제사장들과 사사들에게 하셨는데….그것을 다 지키셨던 것이고, 또 지키고 계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져 가고 있어요. 그것을 “말씀이 성취 되었다, 말씀이 응하였다”라고 합니다. 제가 왜 목사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진실하고 믿을만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안그렇다면 저는 사깃군인거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도 다 사기 당한 사람들이 되잖아요? 맞죠?
(자, 그럼 이사야의 생존 당시로부터 700여년 후 오실 예수님에 대해, 수 없는 예언과 약속을 예언한 선지자 ‘이사야’는 어떤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본 받아야 할까요? 함께 나누며 은혜 받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본론)
가)하나님을 뵙는 믿음입니다.
이사야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진 분열왕국시대에, 남쪽 유다 땅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이십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남쪽 유다의 제 10대 왕, 웃시야가 죽던 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까지 4대 왕의 통치 시대에 예언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의 위기를 맞고 있었어요. 북쪽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곧 남쪽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북쪽과 같이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끊임없이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큰 일을 감당한 선지자가 이사야 입니다. (실제로 136년 후, 남 유다도 북 이스라엘처럼 망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던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우선적으로 주목할 것은 1절부터 4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먼저 하나님을 보고,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늘나라의 아름답고 웅장하고 거룩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은 이렇게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중요한 그의 믿음을 찾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믿음은 우리 삶에 2가지의 경우에서 매우 필요합니다. 우선, 우리가 범죄 할 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아무도 못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몰래 죄를 지어도 하나님과 내 양심은 다 보고 있습니다. 천지우주 만물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들꽃 하나 속에서도 구름 한 점 속에서도 해와 달의 운행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요셉이라는 인물이 바로 이 부분에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아무도 보는 바 없고 알 수 없으니 동침을 하자고 유혹했습니다. 너와 나만이 아는 일이니 한번 질끈 눈감으면 문제가 없으리라며 유혹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보았고, 의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은 먼저 하나님을 의식하였던 겁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를 모든 불의와 유혹과 범죄를 이기게 한 요인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범죄의 유혹에 빠질 때, 아무도 없다고 여길 때, 하나님을 뵙는 신앙이 있어야만 합니다.
또 하나님을 뵙는 믿음이 필요한 다른 경우는 어려움을 당할 때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고난이 옵니다. 앞이 캄캄할 때가 있고, 폭풍우나 칠흑 같은 어두움을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고 거친 파도가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방으로 문제에 포위되었다는 경우의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필요한 것도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과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으로 가던 중 홍해를 딱 만납니다. 배 한 척 없던 그들에게 닥친 홍해가 바로 큰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뒤에는 바로의 무시 무시한 군대가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그들을 다시 잡아 가려고 따라옵니다. 이런 힘든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와 절망을 주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의 사람인 모세는 온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앞을 보면 캄캄하고, 뒤를 보아도 불안하고, 옆을 보아도 대책이 없을 때, 그때는 위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홍해가 열렸습니다. 그들이 다 건너가자 바로의 군대가 홍해로 진격해 옵니다. 그때 갈라졌던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고 바로의 군대가 다 익사해 죽고 맙니다. 그래서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할렐루야!
제프 블록(Geoff Bullock) 이라는 유명한 찬양사역자가 있습니다. 그는 영국태생으로 호주에 건너가 1980~ 90년대에 세계 찬양사역의 획을 그은 사람입니다. 그가 지은 노래 중에 ‘주께 가오니’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 눈이 열려 하나님을 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에 직면할 때, 난관에 부딪쳤을 때, 앞에 캄캄할 때, 하나님을 뵙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 둘째, 자기 자신을 보는 믿음입니다.
5절을 보면,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을 뵙는 믿음의 사람은 자기도 볼 수 있는 믿음이 됩니다. 자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이 됩니다.
자기를 보는 믿음도 역시 2가지입니다. 1)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의 고백을 보세요. 그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에 부정한 백성 중에 한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자시가 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는 그 시대에 의인이었습니다. 타락하고, 부정하고, 악이 성행한 그 시대에 깨끗하고 나름 정직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결코 그는 어떤 사람과 비교해도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죄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비해 형편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보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죄인입니다. 어머니의 모태에서 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음을 다윗도 고백한바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름 의인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믿을수록 내가 더 죄인이요 부족한 자임을 잘 알게 됩니다. 예수 믿고 나면 작은 죄도 커다랗게 보입니다. 너무나 잘 보입니다. 그래서 겸손해 집니다. 그런 믿음이 성숙한 믿음이예요.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이 용서하십니다. 6, 7절을 보니, “그 때에 그 스랍(천사)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만 알고, 자기를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약하기에, 죄인이기에 하나님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들 하나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 셋째, 사람을 바로 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자기를 본 이사야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이제 주변과 사람을 봅니다. 이것이 8절에 나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의 뛰어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 우선이고, 자기를 보는 믿음도 너무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주변과 사람들도 보는 믿음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나만 믿고 천국 가고, 나만 구원받아 행복해서는 안됩니다. 나만 잘 되는 것으로 만족해서도 안 되고, 우리끼리만 잔치를 벌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넘어 이웃에게로 가야 합니다.
사람을 보는 믿음에서 역시 2가지의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1)하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돈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 우리보다 더 외적인 조건은 좋은 거 같은데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서 그런 것을 보여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멸망할 죄인들을 불쌍하게 보시는 눈이있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혼자서도 능히 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나를 봉사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요 축복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의 세가지 믿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먼저 하나님을 뵙는 믿음, 둘째로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믿음,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 그냥 두면 결국 멸망하고야 말 사람들을 불쌍히 보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사야를 본받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런 믿음의 삶을 힘있게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071624 안익선 목사/참조: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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