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사도행전 13장 강해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출발한 1차 선교여행)

호걸영웅 2024. 8. 17. 02:52

사도행전 13장 강해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출발한 1차 선교여행)

 

서론)

13장은 바나바와 사울의 전도팀에 대한 1차 선교여행에 대한 기록입니다.

 

본론)

) 바나바와 사울의 소아시아 파송(1-12)
[
바나바와 사울 - 파송(1-3)]
사도행전은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의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God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있어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일대로 간 빌립 집사의 사역과 지중해 연안 도시인 룻다와 욥바, 가이사랴 등지에서 이루어진 베드로의 사역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이제13~28장은 복음이 땅끝이라고 여겨졌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것의 출발로,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에서 누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와, 먼저 그들의 첫 선교지인 구브로(키프로스 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전해줍니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당시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 즉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5명의 명단이 나옵니다.
①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는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일찍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입니다.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삶에 감동받은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②‘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본문은 시므온의 나이나, 신분, 가족 등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니게르(niger)’였다고 증거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검다’로, 여기에서 ‘흑인’을 뜻하는 영어 ‘니그로(negro)’가 파생되었습니다.

③‘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구레네’란 아프리카 북쪽 지중해 연안, 즉 지금의 리비아에 그리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였습니다. 루기오가 그 도시 출신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④‘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친동생으로 보입니다. 아님 같은 유모에게서 자란 동생일 수도 있습니다. 그 역시 당시 최고 귀족 출신임이 틀림없습니다.

⑤‘사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바리새파 열성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 안에서 국적, 신분, 지역, 계층, 인종, 사상을 초월하여, 한 지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은 교인들도 동일한 믿음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때까지 유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사도행전의 축이 옮겨져 갑니다. 그래서

[(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은,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로 보낼 사람을 선정하는데 ‘제비뽑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할 사람을 세울 때,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금식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했습니다.

[
바나바와 사울 구브로 전도(4-12)]
13:4
부터 14장 마지막까지는 약 2년간의 바나바와 바울의 1차전도 여행 부분입니다.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실루기아는 안디옥 남서쪽 약 2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였습니다. 이때 실루기아에서 구브로로 가는 배를 타는 바울과 바나바가 나옵니다. 이 출항이 인류의 선교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처음 도착한 곳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이였습니다.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살라미(Salamis)’는 구브로 섬의 가장 동쪽에 있는 항구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일행은 살라미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의 여러 회당을 찾아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6-7)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살라미’가 구브로 섬의 동쪽 끝에 있는 항구라면, ‘바보(Paphos)’는 서쪽 끝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와 바울 일행은 문자 그대로 구브로 섬 한가운데를 관통( 180km)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보에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관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바울 일행은 총독을 만났는데, 그 곁에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바예수’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이 총독 서기오 바울이었습니다. 총독이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판단력이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당시의 사람 중에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럼에도 자신 곁에 ‘마술사, 무당’을 두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이러합니다. 2000년 전만이 아니 아니라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운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점집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신문에 동서양의‘오늘의 운세’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참된 진리에 목마름이 있었던 서기와 바울은 바울 일행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술사가 방해했습니다. 그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힘쓰다’라고 하는데, 힘쓰다의 원래의 뜻은‘왜곡시키다,비틀다’입니다. 즉 바울의 복음을 그가 비틀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응입니다.
[(9-12)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복음을 비틀던 바예수는 그 눈이 멀고, 그 모습을 본 총독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소아시아 선교의 시작(13:13-41)
1)바울과 및 동행자들이 소아시아로 가다(13-15)
(13-15)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요한을 비롯한 전도팀은 구브로 섬 동쪽 항구 살라미에서 서쪽 항구인 바보로 이동해 복음을 전한 후, 지중해를 가르는 배에 탑승해 현재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인 밤빌리아 도시 중 하나였던 버가로 이동합니다. 이전까지는 바나바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팀의 대표임을 알렸지만, 13절부터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으로 전환하며 전도팀 대표가 바울로 바뀌었음을 알립니다. 교회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스데반 순교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편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바울이 교회사 전면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전도팀은 지체함 없이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소아시아의)에 이릅니다. 팀원 이탈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해발 2km에 달하는 고봉으로 이뤄진 험산준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차도로 200km 정도의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강도와 산적들이 숨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우르스(Taurus) 산맥을 도보로 이동한 것입니다.

2)바울이 힘차게 복음을 전한 내용(16-41)
(16-19
)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바울은 일어나 손짓하며 시선을 모은 후 설교를 시작합니다. 본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첫 번째 설교문이기에, 그가 초기에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알려줍니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사막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이동했던 ‘출애굽 사건’을 다룹니다.
(20-22
)에선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고 설교합니다.


열왕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중에서 찾고 찾으며 선택하신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고로“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구절은 원문으로 ‘내 마음을 뒤따르는 사람’입니다.
(23-31
)에선,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여 십자가에 달았음을 말합니다. (참조:삼하7:12)
아울러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은 ‘부활’, 즉 ‘살아계신 분’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라는 생명의 말씀을 마주했고, 이것이 그의 삶에 ‘구원’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증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2-41
) =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부활시키리라)하시리라 하셨느니라-고 전파했습니다.,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간 전도팀(13:43-52)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들에서 큰 전도이 힘을 얻은 바울 일행은 만만치 않은 핍박과 저항이 있자 거기에서 이고니온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또 전했다고 했습니다.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안디옥을 떠나서 그 곳으로 부터 150Km 떨어진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결론)

고후4:8,9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고백한 것은, 이런 전투적인 선교적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고백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반드시 열매를 가져옵니 다. 우리가 주 예수님께 위임받은 일을 행할 때, 주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다만 그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핍박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072324 안익선 목사/참조:정한조,이광희,양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