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21장 강해 (이삭의 출생과 이스마엘의 분가)
서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져 이삭이 출생하였습니다. 이삭의 출생과 함께 이스마엘 은 보가에서 축출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매정하 일이나 구속사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인정한 자만이 복의 근원이 되고 메시아를 오시게 하는 혈통이 되야만 했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의 언약이 처음 있은 후로 25년이나 지난 후 성취됩니다.
본론)
가)이삭의 출생(1~8)
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 으므로= ‘권고하셨고’라는 말은 우호적인 목적으로 방문하고 돌아 본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18:10)라 고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한이 되어 사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언약은 후사에 대한 구체적 언급(17장)이 있은 지 무려 13년 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16:16; 17:24,25).
3: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삭은 ‘웃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늙은 몸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불신적 웃음(코웃음?)을 웃었기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지었습니다.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되는 외적인 증표로 할례를 명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준행하였습니다(17:9-14).
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후사에 대한 최초의 언약이 있은 지 25년(12:1-4), 이미 90세 된 사라의 태가 죽은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은 아브라함은 마침내 아들을 얻었습니다.
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들은 사라는 불신과 의심의 웃음을 웃었지만(18:12-15), 이삭을 출산한 뒤에는 기쁨으로 웃음이 만발한 사라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
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그 어느 누구도 사라가 자식을 낳을 줄을 예상하지 못했겠으나 결국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기적이었다는 말입니다.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大宴:큰 잔치)을 배설하였더라.= 중근동의 관습으로는 젖을 때는 날에 종교 의식과 함께 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 행사는 대게 3살 경에 이루어졌는데(마카베오하7:27), 이로 미루어 당시 이스마엘은 17세쯤 된 걸로 봅니다.
나)갈등의 시작과 끝(9~21)
9: 사라가 본 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희롱하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멸시와 조롱을 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17살이나 되는 이스마엘과 3살 난 이삭의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이삭에게 상속권을 빼앗김에 평소의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0: 그(녀)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사라의 요구는 이삭을 보호하고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라는 잔치 자리에서 이삭을 희롱한 이스마엘이 이삭의 생명과 상속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염려하여 이런 조치를 요구한 것으로 봅니다.
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비록 후처에게서 나기는 했지만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아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들로서 많은 애정을 쏟았을 것입니다. 고로 사라의 요구에 근심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도였습니다.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서도 ‘분리’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만이 유일한 언약의 후사이기 때문에 그 아이를 위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로하십니다. 고로 이스마엘의 후손도 12방백으로 번성하여, 그의 후예들이 중근동과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하게 된 것을 볼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체하지 않고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을 주어 하갈의 모자를 내어보냈습니다. 하갈 모자는 장막을 떠나 브엘세바(헤브론 남쪽)까지 갔으나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15: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고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갈은 마실 물이 다 떨어지고 갈증이 심해지는 절망적 상태에서 아들 이스마엘의 생명을 염려해야만 했습니다. 작은 그늘이 있는 떨기나무 아래서 그 아들을 쉬게 하고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이스마엘 앞에서는 울지 못하고, 살 한 바탕 즉 화살이 날아가는 거리만큼 (100~200미터 정도)떨어져서 아들을 바라보고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여기서‘하나님(엘로힘)’이라는 성호는 절대 주권자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무한한 능력으로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하갈과 이스마엘의 고통과 우는 소리를 보시고 들으셨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천사를 통해 위로하십니다.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갈에게 이스마엘을 잘 보호하고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사막 가운데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가 반드시 큰 민족을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갈은 아브라함을 떠나 절망 속에서 사막을 방황하는 가운데, 배고픔과 갈증과 슬픔으로 인하여 판단력이 매우 흐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그 영혼과 마음이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안정을 되찾고 주변을 자세히 둘러볼 수 있는 힘을 회복하게 되어 샘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0,21: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 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이스마엘은 장성하여 활 쏘는 자가 되었으며, 그 자손들도 활을 아주 잘 쏘는 부족을 이루었습니다. 옛날 고구려인들이나 한민족에게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별명이 있었으니(중국고서;설문해자 참조), 아마 도 우리 민족에게도 이스마엘의 피가 제법 흐르는 것은 아닐런지요? 중국에서는 우리 한민족 을 지칭할 때 ‘동이 (東夷)’라고 했는데, 이때 ‘이 (夷)’ 자는 활 궁 (弓)이 포함된 글자로 동이는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 ’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가 거하게 된 곳은 바란 광야로, 동으로는 아라비아, 서쪽으로는 애굽의 술 광야, 북으로 는 팔레스틴 남부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이는 들나귀 같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대로(16:12) 그곳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하갈은 이스마엘에게 자기 동족인 신부로 애굽의 여인을 택하여 주었습니다.
다)아비멜렉과의 갈등과 해결(22~34)
22-24: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 후에 아비멜렉과 비골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아브라함을 방문한 목적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점차 강성해 가는 아브라함과 동맹 관계를 공식적으로 맺기 위해서입니다.(31) 그들이 먼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한 것은……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그랄 지역으로 찾아왔을 때부터 시작되었 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강권적으로 보호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여 상호 우호조약을 맺으려고 했습니 다.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처음 만났 을 때에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듯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 렉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매우 양심적인 사람임을 알기 때문에 공식적인 우호조약을 체결하 기에 앞서 그의 요구를 수락합니다. 이는 신앙인은 이웃을 배타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하 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25,26: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아브라함이 우호조약을 맺기에 앞서 우물의 소유권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시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대부분이 물과 관련이 있으며, 물이 생명의 유지에 필수적임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자신 들이 판 우물을 강제로 그의 부하들이 빼앗은 일에 대하여 책망하였습니다.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은 조약체결을 위하여 계약 당사자에게 예물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관례는 일반적인 것으로 (왕상 15:19; 사 30:6; 39:1)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28-30: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상호 우호조약 체결과는 달리 아브라 함이 우물의 소유권을 확정 짓기 위해 또 다른 계약을 맺기 위하여 암양 새끼 일곱을 따로 더 준 것입니다. 우물의 소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브엘세바는 ‘일곱(양을 주고 산) 우물’이라는 뜻으로, 일곱 암양 새끼로 우물의 소유권을 확정지은 것에 개념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브엘세바 역시 당시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주로 거주했기 때문에 블레셋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아비멜렉이 계약 후 블레셋 땅으로 갑습니다.
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에셀나무는 주로 시내 반도에서 서식하는 상록수로 재질이 단단하며 키가 커서 넓은 그늘을 만들며, 사막에서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나무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작별한 뒤 이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를 드린 것은 영원토록 변함없이 은혜 를 베푸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기념하고 또 아비멜렉과 맺은 계약이 오래 지속되기를 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그 하나님’이란 뜻 입니다. 이는 단지 명멸해 가는 수많은 이방신들과는 달리 영원히 살아 계셔서 당신의 백성 을 보호하시며 평안을 주시며, 언약을 신실히 준행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나님의 영생하시는 성품에 대하여 매우 깊이 알고,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었 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내면적 신앙이 성숙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브엘세바)에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삭이 장성할 때까지 거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하나님이 인도하시든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닮아가야만 합니 다.
110724 안익선 목사/ 참조:행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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