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20장 강해(아비멜렉을 속인 아브라함)

호걸영웅 2024. 12. 5. 00:38

창세기 20장 강해(아비멜렉을 속인 아브라함)

 

서론)
20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남쪽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거할때,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속임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건이 있기 바로 직전, 소돔과 고모라가 죄로 인해 잿더미로 변하는 놀라운 심판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거짓말을 하는 지능적인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위해 나타나시고 역사하셔야만 했습니다.

본론)

)아비멜렉이 사라를 취하려 하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만나게 되고 아비멜렉은 미모가 뛰어난 사라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고로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에 대해 묻습니다. 사라는 자기 누이라고 아브라함이 둘러댑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사라와 혼인코자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빠집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비록 아브라함이 실수했을지라도 아비멜렉의 꿈속에 나타나셔서 두번이나 직접 개입하셔서 사라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 때문에 너는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당신께서 택한 백성을 보호해 주십니다.

사실 아비멜렉은 잘못이 없었습니다. 잘못이 있다면 거짓말을 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편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과는 매우 안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아비멜렉의 편에 서지 않고 불의한 아브라함의 편에 섰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하나님의 편애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에게는 편애라고 느낄 정도로 그들의 편에 서십니다. 예를 들면자기 집의 아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했다고 해도 옆집에 있는 모범생 학생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이것은 공정하냐 불공정하냐의 문제라기 보다 사랑의 본능적 모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인지상정이라고도 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혹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녀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속여서 이렇게 된 것이지 자신은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 일을 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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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때문이니라”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너를 막아(부지중에) 내게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은혜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저지르는 죄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저지른 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사라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윤즉슨, 먼 훗날 사라의 후손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나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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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죽을 줄 알지니라“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그 여인을 범하지 말고 빨리 돌려보내라는 하십니다. ‘나는 사라를 보호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네가 그 여인을 범할 때에는 정녕 너와 네 가족이 다 죽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이 착하고 의로운 것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반드시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고 사랑 받는 까닭은 택함을 받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책망한 아비멜렉(8~10절에)
아비멜렉은 하나님께 항의했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을 불러서 책망하며 자초지종을 따지게 됩니다. “내가 도대체 너에게 무슨 해를 끼쳤고 무슨 원한을 샀기에 네가 나와 우리나라(혹은 부족)를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질문이었습니다.


11~13
절에서 아브라함이 이 질문에 대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답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한 첫 번째 이유는, 이곳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혹시 누군가 아내를 빼앗기 위해 나를 죽일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보다 좀 더 황당합니다. 아브라함은 실제로 이 여인은 나의 이복 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누이였습니까 아니면 아내였습니까? 누이라는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인척관계에 있어서 누이라고 할 만한 이유가 있더라도, 사라는 ‘누이 ’가 아니라 당시엔 아브라함의 아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이런 애매모호하고 궤변적인 자기 합리화를 하였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아브라함이 애초에 아내와 이렇게 약속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비의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셨을 때,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아내라고 하지 말고 누이라고 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둘이서 한 약속이지 이것이 타당한 변명거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 판단하면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모두 어떤 모양으로든 피해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아비멜렉의 착한 처신

아비멜렉은 이렇게 변명하는 아브라함에게 14~16절에서,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사람처럼 보이고,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아브라함은 변명하고 거짓말이나 하는 꽤죄죄하고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아비멜렉은 자기에게 형편없는 이유로 자기를 속여 하나님께 엄중히 야단 맞게 한 아브라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양과 소와 노비를 보내서 그를 선대했습니다.

)만족한 결론, 해피앤딩

17~18=“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고 했어요.


아비멜렉에게 양과 소와 노비와 부인과 은 일천 개를 받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미안했을 것입니다(5종 선물세트?). 그래서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사라를 데려 갈 때부터, 닫아 두셨던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다시 다 풀어주셨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첫번째는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와 연약함을 아시고도 자녀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성, 우리의 윤리, 우리의 선행에 상관없이 우리를 자녀로 대우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린 우리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감사해야만 합니다.

 

2. 두번째는…… 비록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아니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순수하게 공의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훗날 아비멜렉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가문이 세속적인 복을 받은 건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구약의 최초의 선지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상하게도 ‘아브라함의 기도로 네가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잘못으로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인데도 아비멜렉에게 오히려 아브라함의 기도를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후대한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잘못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이기에 양과 소와 노비와 은 일천 개를 그의 아내와 함께 돌려보냈으며 아브라함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택한 자의 중보기도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집의 닫혔던 태를 모두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택한 자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택한 자의 기도는 한 가정을 살릴 수 있습니다. 택함 받은 자의 기도를 통해 이 민족을 고치시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택함 받은 자는 곧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인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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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선 목사/참조: 김순식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