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

창세기 25장 강해(아브라함의 죽음과 야곱과 에서)

호걸영웅 2025. 1. 16. 06:00

창세기 25장 강해(아브라함의 죽음과 야곱과 에서)

 

서론)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죽음과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입니다. 단락은 4단락 정도 나눌 수 있습니다.

 

본론)

)아브라함이 그두라와 재혼하다

1. 먼저, 1절에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후에 그두라를 후처로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와 사이에서 여섯 명의 아들들을 더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두라를 후처로 취한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140세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 상황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생산 능력을 계속 유지시켜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티끌 같은 후손(13:16)과 못 별 같은 자손”(15:5)의 번성을 성취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그두라의 후손들은 이삭, 이스마엘의 자손들과 함께 중근동 지방의 수많은 민족을 형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죽음

 7-8절에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으로 이주하여 꼭 100년을 약속의 땅에서 산 다음 1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여러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순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죽음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죽음을 준비한 자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영원히 살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요한계시록 14:13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21= 이삭이 그 아내가 20년간이나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해 간구하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의 부르짖는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이사야 58:9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1:9에서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간구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구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풍성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야고보서 4:2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 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며, 아울러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확신있는 권면을 성도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 구하시기에 힘쓰시는 신앙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절히 아뢰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도가 인간의 정욕을 위해 사용하려 하거나( 4:3)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때에는 노우(아니야) 라고 응답됨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삼하 12:16, 20:3).

)에서와 야곱이 출생

 23절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태에서 쌍둥이 아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관련하여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은 훗날 형 에서의 후예인 에돔 족속이 동생 야곱의 후예인 이스라엘 민족을 섬김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삼하 8:12.13)

27-28절에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삭 부부가 자식을 편애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삭 부부의 편애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야곱과 에서 형제 간에 갈등과 적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역사적으로도 그 후손들, 이스라엘 족속과 에돔 족속간의 끊임없는 적대 관계를 갖도록 했습니다( 20:18-20, 삼상 14:47).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편애는 유전이 되어 훗날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게 되고 그 결과,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부모의 자녀에 대한 편애는 돌이킬 수 없는 악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 된 자들은 자녀들에 대하여 공평하게 대하고 동일한 분량으로 사랑해야 함을 힘써야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29~34절에는 사냥에서 돌아와 심히 피곤한 에서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팔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32절에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라는 야곱의 요구를 받고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면서 야곱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고 맙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여러분, 한 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거룩한 것을 세상적인 것과 바꾸는 자, 곧 썩어질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의 전형적인 예표가 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 또한 지금 혹시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영적인 특권을 소홀히 함으로써, 에서의 전철(갔던 길)을 밟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간적인 육체의 만족을 얻기 위해 너무도 쉽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장 값싸게 팔아 치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정녕 썩어 없어질 육체의 소욕을 제어할 뿐만 아니라 가장 값진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라면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그 전능하심을 드러내셔서 175세가 되기까지 더 많은 자손을 아브라함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손을 하늘에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 같이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또 신실하십니다.

또 우리는 영적인 것과 신령한 것, 거룩한 것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큰 존중심과 가치를 크게 부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적이고 일시적이고 충동적이고 외모만 번지르르한 것, 탐심 따위에 현혹되어 에서와 같이 장자권이라는 매우 소중한 것을 무시하며 살아선 아니됩니다. 출세와 명예를 위해 교회와 구원을 등한시 여기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면 결국 멸망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교훈삼아 날마다 기도에 힘쓰며 공정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베풀고 영적인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121924 안익선 목사/ 참조:동탄영락교회 & 우인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