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하

사무엘하 4장 강해(공의로운 정치)

호걸영웅 2021. 9. 30. 23:49

사무엘하 4장 강해(공의로운 정치)

 

서론)

 학력과 소득이 올라간 나라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지고 저학력과 빈곤의 나라는 정치에 관심이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독재와 부정부패가 많고 민주화도 안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자 억지로 계획을 하고 공사를 벌리고 내 임기 동안 크게 하고자 애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가지 하나님이 다스리는 의의 정치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한 충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라를 부국강성과 평화와 자유와 복지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 자신은 후대까지 영원히 등불이 꺼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와 연결되 어지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윗의 공의의 정치는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의 마음과 그가 믿는 하나님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앙과 공의, 정치와 공의는 항상 붙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의 욕망과 부와 명예 자기영광에 중점을 두지않고 하나님의 말씀진리와 하나님의 뜻과 그 영광의 편에서 판단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본론)

)맥이 풀린 이스보셋

 

1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성경은 본문의 앞장 3장에서 다윗의 집은 점점 잘되어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더라 고 했습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으니 손발이 잘린 격이 되었습 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자 이스보셋의 당숙(아버지의 사촌 형제)입니다. 고로 그를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이스보셋 왕은 맥이 풀리고 백성들은 당황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에 남아 있던 사람들.

 

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3 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 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이스라엘 북부 평원지대)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2절에 보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는 군지휘관이 두 사람 있었는데, 바아나와 레갑입 니다.  그들은 브에롯 지역의  베냐민지파 사람입니다. 브에롯은 가나안 정복 당시 항복한 히위 족속의 대표적 네 성읍입니다( 9:17). 일찍이 브에롯 주민이 베냐민 땅인 깃다임으로 도망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면서 베냐민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18:25; 삼하 4:2).  그들은 사울에게 충성하던 사람들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는 므비보셋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사울과 아버지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겨우 다섯 살이었습니다.

 

 유모가 그를 업고 서둘러 도망하다가 그가 안았던 아이가 떨어져 한 쪽 다리가 부러져?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피하여 숨어살았습니다. 망한 왕조의 마지막 손자의 모습을 모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권력무상?입니다.

 

아버지 요나단은 생전에 이것을 알고 다윗에게 자기의 후손을 부탁했던 적이 있었습니 다. 므비보셋은 훌륭한 아버지 요나단을 두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행방을 찾아서 왕궁으로 데려 온 후, 자신의 식탁에서 므비보셋이 함께 식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통하여 므비보셋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반역자 레갑과 바아나의 최후

 

5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6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7 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한 낮에, 브에롯 사람 레갑과 바아나가 이스보셋이 있는 왕궁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한창 더운 대낮에 그 곳에 도착하였는데, 때마침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밀을 가지러 온 사람처럼 꾸미고, 대궐 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찔러서 죽였습니다. 이전에 는 충성하던 왕을 이제는 이용 가치가 없어 반역을 한 것 입니다.

 

 레갑 형제가 왕의 머리를 잘라 가지고 나와, 밤새도록 아라바 길(95킬로, 60마일)  달려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이르러 말했습니다.

 "다윗왕이여, 당신의 생명을 노리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여기에 가져 왔습니 다. 하나님께서 오늘에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벌을 내려서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고 합니 다. 그들은 다윗이 자신들을 크게 칭찬하고 한 자리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이 이전 에 다윗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 가문을 원수로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이익에 따라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가 하는 기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정치가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매우 상황 판단을 잘 하고  대세를 읽어 줄을 잘 서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공의로운 신념에 비추어 볼 때는 자신의 주인을 업신여기고 살해한 역적들입니다. 깡패세계에서도 한번 배신 자는 영원한 배신자라고 합니 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다시 배신할 자들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목을 가져온 아멜렉 소년이 죽은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결국 레갑과 바아나를 죽입니다.

 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10 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11 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 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12 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레갑 형제의 일은 다윗에게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보통의 정치적인 사람, 불신자였다면 이들에게 상을 주었을 것입니 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이스보셋을 제거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좋아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정치 생리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의 목을 가져온 아말렉 소년에게 상을 주지 않고 죽인 사실을 말하면서 레갑 형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죽입니다.  

 

다윗은 그 동안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행동했던 기준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행동하고 있습니 다. 그는 사울에게 쫓길 때나 왕이 되었을 때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의입 니다. 그리고 주인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형제에게 무고한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린 죄는 피로서 책임지게 했습니다. 요압 장군에 대해서도 동일했습니다.

 

그런 후, 다윗이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그 두 사람을 죽인 후, 그들의 손과 발을 모조리 잘라 낸 다음에, 그들의 주검을 헤브론의 연못가에 달아 매었습니다. 악을 행한 손에게 더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나 이스보셋의 머리는 가져다가, 헤브론에 있는 아브넬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이스보셋을 의인으로 보았고. 레갑과 바아나는 악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의인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은 악인입니다. "살인죄는 자기 머리로 가야한다. 이 땅의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악을 제하여야 한다" 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공의의 정치의 원리요 기둥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이스보셋과 므비보셋을 일관성 있게 대우했습니다. 

 

북 이스라엘 정치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없었습니다. 자기편, 자기생각과 이권만 판을 쳤습니다. 여기에서 정통성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나중에 솔로몬 이후에 남조와 북조로 완전히 나라가 두조각으로 나누어지는데 북쪽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왕들도 빨리 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통성 문제입니다.

 

정통성은 어디서 나옵니까? 다윗 언약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성전의 제사장소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사마리아였습니다. 정통성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보고 판단을 잘하고 줄을 잘 서야 복을 받습니다. 오래갑니다. 교회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른 교리 바른 가르침이 있는 교회에 참예함이 중요합니다.

이단적 교회 출석은 반드시 훗날 큰 사회문제 가정문제 장래 문제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결론)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베스트 셀러가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기준이란 어떻게 보면 참 어려운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공의란 것이 개인적인 생각, 주장, 혹은 시대의 상황윤리, 혹은 여론, 시대에 따라, 이념에 따라, 나이따라, 지역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현령 비현령'이 될 수 있습니다.  '아전인수', '내로남불'이 되기 십상입니다. 공산주의자는 무신론이 정의입니다. 강도나 도둑들에겐 도적질이나 강도질도 정의 일 수 있습니다. 먹고 살아가는 한 방법(좀 특수한 직업)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의 참된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다윗은 그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의 공의가 선행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법과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람편에 서지 않고 자신 유익의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편, 말씀의 편에 섰습니다. 그것이 공의를 이루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윗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092321 안익선 목사/ 참조: 송은근 목사